[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법원이 ‘방역패스’ 정책을 학원과 독서실 등 교육시설에 적용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판단을 내렸다.
앞서 정부는 방역패스를 전면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다른 시설에서도 법적 절차를 밟고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전날(4일) 청소년 방역패스를 반대하는 함께하는사교육연합 등 학부모단체가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집행정지(효력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에 따라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지 않거나 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성인 '미접종자'는 그간 출입이 금지됐던 학원·독서실·스터디카페를 당장 이날 저녁부터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시험 등을 준비 중인 미접종 성인은 접종 완료 후 2주가 지났다는 증명서나 PCR 음성확인서가 없이도 학원에 등록할 수 있으며, 독서실과 스터디카페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이는 행정소송 본안 1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유지된다.
당초 이번 가처분 신청은 입시를 앞둔 청소년이 학원 등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보호해달라는 차원에서 제기됐다.
하지만 법원이 학습·직업선택권 및 자기결정권에 초점을 맞추면서 방역패스를 둘러싼 논쟁은 '연령'이 아닌 '기본권' 문제로 넘어가게 됐다.
재판부는 "백신 접종자의 이른바 돌파 감염도 상당수 벌어지는 점 등에 비춰보면 시설 이용을 제한해야 할 정도로 백신 미접종자가 코로나19를 확산시킬 위험이 현저히 크다고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번 법원 판단에 나오면서 다른 시설에서도 방역패스 도입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정부가 지정한 방역패스 의무적용 시설은 유흥시설, 노래방, 실내체육시설, 목욕탕, 경륜·경정·경마·카지노, 식당·카페, 학원, 영화관·공연장, 독서실·스터디카페, 멀티방, PC방, 실내경기장, 박물관·미술관·과학관, 파티룸, 도서관, 마사지·안마소, 마트·백화점 등 총 17개 시설이다.
오는 10일부터는 대형상점과 마트, 백화점에도 방역패스가 신규로 적용될 예정이었다.
현직 의사도 방역패스 정책 반대 집행정지 신청…의료계 갑론을박
한편, 의료계 인사들 중에서도 방역패스 정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31일 조두형 영남대 의대 교수를 비롯한 의료계 인사들과 종교인, 일반 시민 등 1023명은 보건복지부 장관과 질병관리청장, 서울시장을 상대로 '방역패스'에 반대하는 집단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원고들은 "정부가 미접종자에 대해 식당, 카페, 학원 등 사회생활 시설 전반 이용에 심대한 제약을 가하는 방식으로 임상시험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사실상 강요해 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양산하고 있다"며 "행정처분은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아울러 방역패스 조치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켜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함께 법원에 제출했다.
원고들은 "스웨덴, 일본, 대만, 미국 플로리다주처럼 과도한 정부 통제 대신 먼저 무증상, 경증으로 지나가는 환자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해 집단면역을 유도하고 중증 환자는 정립된 코로나19 치료 가이드라인에 따라 집중 치료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방역패스 정책에 대해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에 찬성하고 권고하는 입장이지만 생필품을 파는 대형마트까지 방역패스로 묶는 건 심한 거 같다"며 "성인의 93%가 백신을 접종했으면 접종률은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고 마스크도 잘 쓰고 우리 국민들의 호응이 높은 편이다. 7%의 미접종자는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애매한 경우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역패스는 미접종자들의 반발이 크고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하는 면이 있는 만큼 국회 등을 통한 더 신중한 논의 과정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방역패스는 백신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빈발하는 돌파감염 사례로 볼 때 백신 접종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위드 코로나를 시행해야 한다. 위중증 환자가 늘었지만 대부분 60대 이상 고위험군이다. 60대 이상만 추가 접종하면 되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강요하는 결과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방역패스 정책 자체에는 동의하지만, 도입 과정에서 세부적인 사안을 살필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온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접종률이 90%를 넘었어도 나머지 10%가 안 되는 사람 중에서 위중증·사망자가 주로 나오고 있어 접종률만으로 방역패스의 실효성을 예단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신우 경북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에서 소극적인 대응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방역패스는 환자 발생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며 "다만 예외적으로 백신을 못 맞는 사람도 있으니 이들을 보호할 세심한 방안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