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최근 의료계 큰 관심을 끈 대법원 판결이 있었다.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린 행정처분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단순히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를 총괄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여러 하급심들은 보건복지부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도 심리불속행 기각을 판결했었다.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하면 관련 규칙에 따른 적법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출근을 하지 않았더라도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영상판독을 하고, 품질관리 적합판정을 받은 전산화단층 촬영장치를 활용해 영상진단료를 청구했다면 이는 요양급여환수처분의 근거인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담당하는 ‘의료영상 품질관리, 영상화질 평가, 임상영상 판독 업무’는 촬영된 의료영상을 확인하는 것”이라며 “이런 업무는 최근 전자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원격지에서 수행이 가능하며, 반드시 출근을 해야 수행할 수 있는 업무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CT의 경우 ‘전속’이 아니라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둘 수 있도록 한 점을 고려하면 해당 전문의가 반드시 출근해야만 품질관리 및 판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오랜 시간 의료기관의 ‘단골 소송거리’였던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 출근 문제와 관련, 이번에 대법원의 새로운 판단을 이끌어낸 법무법인 태평양 박상현 변호사 팀[사진]은 “법령의 문언 및 행정법의 원리에 부합하는 판결로 그간의 혼선을 정리할 수 있게 됐다”고 평석했다.
이어 “무엇보다도 의료기술의 발전과 의료현장의 상황을 고려해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역할이 재정립한 판단”이라며 향후 유사한 사건에서 판단의 지침이 될 거라 내다봤다.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난 박상현 변호사는 “그동안 의료기관에선 ‘비전속’의 의미가 ‘출근을 해야 한다’로 해석돼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비전속 전문의가 출근을 해야 한다는 명확한 규정이 없었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의료영상품질관리의 수행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또 인력 운용과 관련한 명확한 기준에 대한 지도나 홍보도 부족했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사실 종전까지는 특수의료장비 운용규칙에서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업무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또 부당청구의 대상이 되는 업무범위가 어떻게 되는지 정립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관련 규정에 대한 지도나 홍보까지 이뤄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선 의료기관에선 혼란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복지부가 현지조사의 시기와 범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환수액은 천차만별이 되기도 했다. 몇몇 의료기관은 수 억 원의 환수처분을 받으면서 병원 운영에 큰 타격을 입기도 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의료계 이목이 유달리 쏠렸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박 변호사는 이어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과연 출근해야 되는 것인가’, ‘단속을 당한 병원이 과연 진료의 퀄리티나 환자의 건강 측면에서 어떠한 잘못을 했다는 것인가’ 라는 문제의식에는 우리 팀도 공감했다. 이번 사건은 이같은 생각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박 변호사 설명에 따르면 이 사건 문제의 발단은 복지부 내부지침인 ‘특수의료장비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운영지침’이었다. 이 지침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에 대해 '최소 주 1회 이상 근무를 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이 내부지침에서 ‘1회 이상 근무’를 ‘1회 이상 출근’이라고 해석하며 처분의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러한 내부지침이 상위법령인 의료법의 위임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짚었다.
의료법 위임에 따른 ‘특수의료장비규칙’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에 대해 ▲특수의료장비의 의료영상 품질관리 업무의 총괄 및 감독 ▲영상 화질 평가 ▲임상영상 판독 업무를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출근 등 업무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고, 그 의미에 대해 운영지침에서 정하도록 위임하고 있지도 않는다.
박 변호사는 “대법원 판결 전의 일부 하급심에선 이같은 복지부나 건보공단의 해석처럼 출근이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의 업무에 필수적이라고 보아 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영상화질 평가를 하지 않은 것으로 추단했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상하위법령의 명확한 상하관계가 정리됐고, 출근이 반드시 필수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료기관의 혼란도 일정 부분 해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건에 참여한 이준구 변호사는 “이 판결에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법원이 기술의 발전이 의료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앞으로 의료현장에는 원격판독 외에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고, 이와 관련하여 이 사건과 같이 의료현실과 기술발전의 현황과는 괴리된 법령해석으로 인해 여러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법원이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이덕우 변호사는 여전히 영상의학과 전문의를 운용하는 의료기관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덕우 변호사는 “판결문을 살펴보면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가 출근을 하지 않는 것 자체에는 법리상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 만에 하나 문제의 소지를 남겨두지 않는 것이 당연히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출근을 하지 않았다면, 의료영상품질관리의 총괄이나 감독과 같은 비전속 영상의학과 전문의로서의 업무를 했다는 자료를 확실하게 남겨둬야 한다. 일부 사건을 진행하다 보면 명확한 자료를 남겨두지 않아 곤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