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필수의료 활성화 대책의 윤곽이 잡히면서 의료계 내부적으로 잠잠하던 필수의료 범위 논쟁이 재점화될 것으로 보인다.
파격적인 수가 인상과 더불어 필수의료 기피현상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던 의료사고 책임 완화책이 제시되면서 필수의료 포함 여부를 놓고 의료계 내부적으로 갑론을박이 예상된다.
정부는 지난해 필수의료 강화 대책을 발표하며 향후 5년간 10조원 이상 건강보험 재정을 필수의료 수가 인상 등에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명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는 ▲의료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 총 4개 과제로 이뤄졌다.
이 중 의료인력 확충은 의과대학 증원 사태로 표류 중이며, 지역의료 강화 역시 의료대란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다만 ‘보상체계 강화’와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은 서서히 그 윤곽이 잡히는 모습이다.
필수의료 수가 인상 정책이 가장 또렷하다. ▲신생아실 모자동실 입원료 50% 인상 ▲소아중환자실 입원료 인상 ▲응급분만 정책 수가 55만원 도입 등이 연이어 시행됐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10조원 넘는 예산을 필수의료 활성화에 쏟겠다고 공언한 만큼 앞으로도 파격적인 수가 인상 정책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최근에는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의 가장 큰 숙원이었던 의료사고 소송 부담 완화책이 구체화 되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에 대해서는 의사의 중과실이 없는 한 환자가 중상해를 입더라도 불기소하고, 사망해도 형(刑)을 감면하는 방안이 추진 중이다.
뿐만 아니라 필수의료 분야 의료사고 발생시 국가 보상 한도를 현행 3억원에서 10억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방안도 함께 논의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파격적인 혜택이 예고된 필수의료 영역이다. 정부는 분만, 중증외상, 심·뇌혈관질환, 소아증증질환을 ‘고위험 필수의료’로 분류했다.
진료과목이 아닌 질환유형으로 범위를 설정함으로써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판단이지만 필수의료 범위를 둘러싼 갈등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6월 발의된 필수의료법에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생명을 보존할 수 없거나 심신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의료서비스'를 필수의료로 규정했다.
그러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현재 정의만으로 필수의료 종사자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어려워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출한 바 있다.
의료계 역시 ▲명확한 범위 미설정에 따른 내홍 우려 ▲필수의료로 정의되지 않은 진료과 및 진료영역은 비필수의료 인식 ▲불명확한 정의로 인한 형평성 등을 지적했다.
이처럼 ‘필수의료’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세우지 않은 상태에서 각종 활성화 대책이 추진되면서 의료계의 우려도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한 의료계 인사는 “동일 질환이라도 중한 상황과 경한 상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필수의료를 특정 진료과나 질환, 영역으로 규정하는 것은 논란이 많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필수의료에 대한 정의가 법적으로 명확해진 상태에서 활성화 대책이 체계적으로 세워져야 한다”며 “일련의 상황은 향후 누더기 정책이 될 공산이 크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필수의료 활성화 분위기가 정점에 이른 만큼 소모적 논쟁 보다는 보편타당한 영역부터 선제적으로 시행한 후 점차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다른 의료계 인사는 “정부가 제시한 분만, 중증외상, 심뇌혈관질환, 중증소아질환 등 이의가 없는 영역부터 필수의료 활성화 대책을 시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단 필수의료 활성화에 시동을 거는 게 급선무”라며 “범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 추가해 나가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