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시스템은 체계적 일관성을 회복해야 한다. 일반 국민에게 부과되지 않는 규제를 공공의료 이름으로 의사에게 적용한다면 의료서비스 발전과 의사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공공의료를 발전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형욱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前대한의사협회 비대위원장)는 최근 대한내과학회지에 '갈라파고스 의료체계 한계와 개혁'을 발표하고 필수의료 회복을 위한 의료시스템 개혁 필요성을 주장했다.
박 교수는 "2024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은 한국 의료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의료계를 더 혼란에 빠트렸다"고 지적했다.
정부 정책이 초래한 왜곡된 '의료시스템'
박 교수는 대표적인 정책 실패 사례로 보건복지부의 의대정원 확대를 꼽았다. 앞서 보건당국은 중증응급의료 부족을 해결하고자 의대 정원을 기존 3058명에서 5058명으로 대폭 늘리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해당 정책이 필수의료 위기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의료진 경쟁을 심화시키고 의료서비스 질(質) 저하를 초래할 것이라며 반발했다.
특히 한국 의료시스템은 민간의사와 민간의료기관을 국민건강보험에 강제로 편입시킨 의료기관 강제지정제도로 인해 국민들은 큰 혜택을 받았지만 의사들은 수십년간 고통을 감수해왔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이 시스템은 여러 규제 계층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구조적 모순이 발생하는 동시에 의료종사자에게 부과되는 민·형사 책임이 커지면서 필수의료 서비스 이탈이 가속화된 요인으로 지목했다.
결국 보건복지부가 제안한 2024년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와 의대 증원은 한국 의료시스템의 구조적 문제를 완전히 무시한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요양기관 강제지정제→의사 보상 무(無)
박 교수에 따르면 현재 강제지정제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많지 않으며, 독일과 일본과 같은 나라는 의료 기관이 건강보험 체계와 계약을 맺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병원이 자율적으로 건강보험 기금과 협상을 통해 계약을 체결하며 의료 기관의 선택권이 보장된다. 일본 또한 개별 병원이 건강보험 가입자와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어 한국과 같은 강제지정제와는 차이를 보인다.
이와 비교했을 때, 한국의 강제지정제는 의료서비스 제공자의 자율성을 제한하고 장기적으로 필수의료 붕괴를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영국도 공공의료와 민간의료가 공존하는 체계를 유지한다. 미국은 민간 의료보험 중심이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메디케이드(Medicaid)와 노인을 위한 메디케어(Medicare)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의료를 보완하고 있다.
영국은 NHS(National Health Service)를 통해 공공의료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민간 의료기관도 활성화되어 있어 국민들이 선택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이처럼 선진국들은 의료서비스 유연성을 확보하면서도 의료진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
박 교수는 "반면 우리나라는 요양기관강제지정제 아래에서 의사로서의 오랜 노력과 경험을 반영할 수 있는 보상 제도가 없다"며 "이는 마치 보건복지부 사무관 보수나 국실장 보수를 동일하게 만들어 놓은 것에 비유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필수의료 위기 해법으로 '강제지정제' 개혁 꼽혀
그는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요양기관강제지정제 개혁을 필수 사항으로 꼽았다.
즉, 공공의료를 유지하되 민간의료 독립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또 의료진 노동환경을 개선하고 적절한 보상을 제공함으로써 필수의료 분야에서 지속 가능한 인력 공급을 유도해야 한다는 견해다.
그는 “현재 한국 의료 시스템은 필수의료 분야 종사자들에게 과도한 업무 부담과 낮은 보상을 강요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진들의 탈출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며 “필수의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의료진에 대한 처우 개선과 함께 의료서비스 제공 유연성을 보장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정책이 아니라 의료시스템 전반의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정부가 의료진을 일방적인 규제로 통제하려는 방식에서 벗어나, 의료서비스 질적 향상과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정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라며 “국민 건강을 책임질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양질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으로 한국 의료체계를 살리는 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