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회사를 상대로 10년 넘는 세월 소송을 진행 중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차 판결을 앞두고 병원계와 시민단체 등에 SOS를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송 당사자인 건보공단 외에도 보건의료단체와 노동시민단체 역시 담배의 해악을 지적하고 그 책임이 담배회사들에 있음을 알림으로써 2심을 승소로 이끌겠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병원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최근 국립대병원협회, 국립암센터, 국립중앙의료원, 근로복지공단, 대한병원협회 등에 ‘담배소송 지지 성명서’ 참여를 요청했다.
아울러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무상의료 운동본부, 좋은공공병원만들기 운동본부 등 노동시민단체들에도 협조를 당부했다.
의학적 측면과 소비자 보호 측면의 쟁점을 중심으로 보건의료단체와 시민단체에서 각각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파급 효과를 극대화 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 건보공단이 제시한 성명서 초안을 살펴보면 다소 강경한 표현들이 다수 포함됐다.
‘국민 생명을 지키기 위해 담배회사들의 왜곡된 주장에 단호히 대응할 것’, ‘법원이 국민 건강권 수호를 위해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것을 촉구’ 등의 내용들이다.
세부적으로는 흡연의 해악을 부정하는 담배회사에 대한 강력 경고 메시지가 담겼다.
‘담배회사들은 질병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허위 주장을 펼치며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해 왔다’, ‘국민 기만행위를 멈추고 법적, 사회적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 등 수위를 높였다.
아울러 ‘흡연은 단순한 습관이 아닌 기업이 의도적으로 조장한 중독’이라는 점도 부각시키고자 했다.
성명서에는 ‘담배회사가 중독성 강화를 위해 의도적으로 첨가제를 사용하고 있고, 이는 조직적인 기만 행위이자 건강을 해치는 의도적인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특히 미국의 담배소송 결과도 제시하며 이번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송이 주요한 선례가 돼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실제 미국은 지난 1998년 46개 주정부들이 미국 4대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25년 만에 2060억달러의 비용 지급에 합의한 바 있다.
또한 1999년 미국 연방정부가 7대 담배회사와 2개 담배연구소를 상대로 부정부패조직범죄방지법 위반으로 제소한 사건에서 담배회사의 위법행위가 인정되기도 했다.
건보공단은 앞서 지난해에도 담배소송 승소를 위한 여론전을 전개한 바 있다.
담배소송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확산시키기 위해 지난해 5월 7주에 걸쳐 ‘담배소송 응원 릴레이 챌린지’를 진행했다.
챌린지는 담배소송 지지 인증사진‧응원 문구 등을 촬영, 다음 주자를 지목해 사회관계망서비스(페이스북, 인스타 등)에 올리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총 1600여 명이 동참했다.
정기석 이사장은 “담배 유해성과 중독성은 불변의 진리며 소송을 통해 담배 폐해 진실이 명백히 밝혀지고 법적으로도 정의로운 판단이 내려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담배소송은 건강보험공단이 지난 2014년 담배회사 ▲KT&G ▲한국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 등을 상대로 53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건강보험공단은 흡연폐해에 대한 담배회사 책임을 규명하고 흡연 관련 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건강보험 재정의 누수 방지를 위함이라고 소송을 배경을 밝혔다.
손해배상액은 20갑년 이상, 30년 이상 흡연 후 폐암 중 편평세포암·소세포암, 후두암 중 편평세포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3465명의 공단 급여비를 기준으로 책정됐다.
대규모 액수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니만큼 6년 7개월이라는 긴 공방 끝에 2020년 11월 첫 소송 결과가 나왔지만 법원은 담배회사 손을 들어줬다.
우선 흡연과 폐암 발병 간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흡연 이외에 다른 요인들에 의해 폐암이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흡연이라고 원인을 단정 짓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특히 법원은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1심은 건보공단의 완패였다.
공단은 즉각 항소했다. 이후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지난 1월 진행된 제11차 변론기일에는 건보공단 정기석 이사장이 참석해 직접 변론하며 소송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오는 4월 23일 제12차 변론이 잡혀있으며 이후 2심 판결이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