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마른수건 짜기' 더 이상 불가"
정재훈 고려의대 교수 "효율성 집착 정책, 부작용 우려" 제기…"의료전달체계 재설계"
2025.04.11 05:41 댓글쓰기



의정사태 이후 상급종합병원들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정책을 탈피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상급종합병원들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고 종합병원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현재의 구조로는 더 이상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예방의학교실 정재훈 교수는 10일 열린 대한병원협회 국제학술대회 ‘상급종합병원과 지속가능한 전달체계’ 포럼에 연자로 나서 이 같은 우려를 전했다.


정 교수는 그동안 우리나라 의료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생산성 높은 인구비율을 기반으로 질적, 양적 성장을 이뤘지만 점차 그 기반이 무너지며 각종 지표가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가성비 대명사’로 통하던 한국의료는 GDP대비 의료비 지출 비율이 이미 OECD 평균을 훌쩍 넘겼고, 2060년에는 20%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특히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돈을 버는 인구는 줄고 돈을 소모하는 인구가 늘면서 2040년에는 젊은세대 1명 당 2명, 2050년에는 2.5명까지 부양인구가 늘 것이라는 관측이다.


전반적인 의료체계 지속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상급종합병원들 위기감 역시 점차 심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의정사태를 계기로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추진되면서 상급종합병원들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


정재훈 교수가 추계한 바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들이 전공의 1명을 전문의 2명으로 대체할 경우 1조3674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0년 기준 상급종합병원 의사 인건비가 2조4000억원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이들 병원이 전공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총매출의 8%를 인건비로 추가 지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여기에 종합병원 대비 낮은 수익성으로 상급종합병원들의 어려움은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난소암, 담낭암, 대장암, 신장암, 뇌동맥류 등 각종 중증질환의 환자 1명 당 요양급여 비용은 상급종합병원이 종합병원 보다 8% 정도 적었다.


같은 질환을 치료하고도 더 적은 비용이 발생하는 기현상이 상급종합병원들의 재정 상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상급종합병원,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종합병원보다 수익성 낮아

전공의 대체비용 1조3674억 소요

의료전달체계 확립 위한 재원 조달 다각화 필요


문제는 초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지출 증가로 건강보험 재정 당국 입장에서는 ‘효율성’을 기치로 의료기관들을 옥죄는 정책을 강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정재훈 교수는 “건강보험의 효과 우선주의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동일 가격에 더 좋은 의료를 지향하던 가치가 이제 동일 의료에 더 낮은 가격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하지만 전달체계 개편과 재원조달 다변화 등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채 상급종병에 마른수건 짜기만 강요해서는 작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급종합병원을 비롯한 각 의료기관의 기능 재정립, 기관이 아닌 질환 중심의 전달체계 구축 등이 이뤄져야 한다는 제언이다.


그는 “권역별 전문화를 통해 환자의 접근성을 유지하면서도 단계적 치료가 이뤄지도록 체계를 보완하고 이를 가능하게 할 재원 조달 방식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어 “의료체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고 국민에게 보다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는 기술 도입에도 힘써야 한다”고 덧붙였다.


패널들 역시 상급종합병원 지속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유석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정책연구소장은 “적은 의사들이 많은 환자를 진료를 하며 유지해온 시스템이 한계에 이르러 분만 등 필수의료가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결국 재원 마련이 핵심인데, 건강보험료 인상 등 비용 부담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지출구조 합리화를 병행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특히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감기나 물리치료를 급여로 보장해주는 곳은 없다”며 “환자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남용하고 있는 부분들이 적잖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


김한수 이대목동병원 병원장은 “병원급 의료기관과의 수가 역전현상으로 박리다매에 나서고 있는 상급종합병원에게 효율성 극대화만 요구하는 형국”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각 종별 의료기관이 상호 대체-보완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경쟁 관계에 있다”고 덧붙였다.


장성인 국민건강보험공단 국민건강연구원장은 “상급종합병원에서만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지속 가능성 확보에 중요한 지점”이라고 말했다.


신정호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기획실장은 “상급종합병원이 완연하게 중증질환 중심 진료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수가체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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