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대학 정원 확대의 무게추가 긍정 방향으로 쏠렸다. 정원 확대와 유연한 추계 정책을 지속하고 2030년을 기준으로 축소 여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공감을 형성한 데 따른 분위기다.
의대 정원 확대의 가늠좌가 될 의사 인력 추계는 여러 요인으로 명확한 추계가 어려운 만큼 전담 기관을 신설해 장기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누구도 이견을 제기하지 않았다.
병원계는 수급 분석을 토대로 의대정원 확대에 더욱 힘을 실었고, 대한의사협회는 요양급여비 폭증 등을 근거로 정원 확대를 강력 반대해 기존 태도를 고수했다.
지난 23일 의학한림원이 주최한 ‘의대정원 조정과 대한민국 의료 미래’ 포럼에서 연세대학교 예방의학교실 박은철 교수는 ‘의사인력 현재와 미래’를 발표하고, 정원 확대에 긍정 의견을 표명했다.
박은철 교수는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의사 부족 및 충분 근거 모두 타당성이 골고루 존재한다”며 “소모적 논쟁보다 과학적 분석을 통한 미래 예측이 핵심이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 수요와 공급 분석에 있어 공급 예측은 간단하지만, 수요는 변동 요인이 많아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라며 “다만 노인인구 증가는 이견이 없어 의대 정원과 관계없이 10년 동안은 지역의료와 필수 의료 문제가 꾸준히 이슈로 거론될 것”이라고 조명했다.
이에 박 교수는 의대 정원을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500명씩 늘리는 한편, 공급이 수요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 2030년께 정원 지속 및 축소를 재논의하자는 견해다.
'의료인력검토위원단(가칭)' 설립하고 5년 단위 의사인력 수요‧공급 검토
다만 이 같은 정책 실현을 위해서는 '의료인력검토위원단(가칭)'을 설립하고 5년 단위로 의사인력 수요와 공급의 유연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더불어 그는 의사 공급 탄력성을 부여하기 위해 의과대학과 한의대학의 인력 시프팅(shifting)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인력 시프팅이란 총 정원을 두고 양측 인원을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을 일컫는다.
박 교수는 “현재 기준의 인력 추계만 믿고 장기적 수급 대책을 세울 수 없어 상시 조직인 의료인력검토위원단을 제안한다”며 “특히 한의사들은 필수의료 관여율이 적기 때문에 의과대학 정원을 늘리는 등 유연한 인력 조정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과 필수의료 연관성 없고 증원 후폭풍 '요양급여비 폭증' 외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우봉식 소장은 의대 정원과 필수의료 무관론을 주장하며 일각에서 내세운 낙수효과를 강력 비판했다.
우봉식 소장은 “낙수효과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낙수효과로 필수의료에 배치된 사람들에게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응급실 뺑뺑이 문제도 정원 확대가 아닌 응급 등급 판정 체계를 바꾸면 상당 부분 해결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의대 정원 확대 논의에 있어 그 누구도 폭증할 요양급여 비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우 소장은 “전체 인구 1000명당 담당 의사 1명이 늘면 총 의료비는 22%까지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는 의협이 만든 게 아닌 통계가 아닌 건강보험공단 연구보고서에서 나온 내용”이라고 토로했다.
우 소장에 따르면 오는 2040년 의대 정원을 현행 유지 시 요양급여비 총액은 333조원 수준에 머문다. 반면 의대정원 350명 증원 시 339조원으로 폭증한다. 이를 토대로 시뮬레이션 가동 시 ▲500명(342조원) ▲1000명(350조원) ▲2000명(368조원) ▲3000명(385조원)로 추계된다.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의 6600병상 증설은 좌시하면서 의대정원 확대를 고집하는 보건당국을 비판했다.
의료정책연구소 분석을 토대로 추산된 수도권 대학병원 분원 6600병상 증설 효과는 연간 요양급여비 2조4810억원의 추가 발생이다. 2021년 상급종합병원 병상당 연 매출 3억7591만원을 토대로 산출한 수치다.
다만 의대정원 반대와 달리 의사인력 수급 거버넌스 현황 및 구조를 위한 전담조직 신설에는 찬성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수탁연구 수행을 통해 인력을 추계할 뿐 전담조직은 존재하지 않는 실정이다.
반면 일본은 전담조직은 없지만, 상세한 의료인력 수급표를 활용해 정책을 세밀하게 설계한다. 미국은 보건의료인력분석연구센터(NCHWA), 네덜란드 보건의료서비스연구소(NIVEL), 호주 보건의료인력기구(HWA) 등이 인력 추계를 전담하고 있다.
보건의료 수급 체계 전담기구 발족하고 의료일원화 해결 필요
의학한림원 한희철 부원장(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이사장)도 "보건의료 수급 체계를 전담할 기구와 함께 의료일원화 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희철 원장은 “고령화 쓰나미로 초고령사회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며 “문제해결을 위해 모든 요인을 추계할 거버넌스 혹은 독립연구기관 설립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을 토대로 정부가 5년마다 보건의료 발전계획 수립하지만, 의료체계에 문제점을 지목하고 의료인력 수급 문제까지 전담할 조직 신설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대표적 벤치마킹 사례로 네덜란드 보건의료서비스연구소를 언급하면서 근거 중심 의료정책 수립을 강조했다.
병원협회, 의대 정원 확대 찬성하지만 속도 '조절'
대한병원협회 신응진 정책위원장도 의대정원 확대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다만 2020년 당시 의약 분업으로 감축된 10% 정원을 복원하는 수준이 적절하다는 견해다.
병협도 의대정원 확대 관련 TF를 구성해 논의에 있으며, 급진적 진행보다는 세밀한 검토와 논의를 거쳐 신중한 진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신응진 위원장은 “아무런 대책 없이 의대 정원을 늘리면 피부미용에 쏠릴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의료계 우려”라며 “피부미용도 나름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필수의료 의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특단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복지부, 의대정원 정책 절실 및 인력검토위 찬성
복지부 의료인력정책과 송양수 과장은 의대정원 정책이 단순 확대에 국한된 사항이 아닌 지역 필수의료 살리기를 토대로 다양한 의사들의 진출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준비된 대표적 정책이 의료사고 부담 완화, 필수의료 수가 개선, 시대 변화에 맞춘 근로여건 개선 등이다.
특히 의료체계 중심점으로 병원을 지목하고 현장을 떠나는 전문의 최소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이를 위한 패키지 정책이 마련 중이며 추가 대책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송양수 과장은 “정부는 지난 18년간 꾸준히 추진한 의대 정원 조정 문제를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인식하고 절체절명 위기의식을 느끼며 추진하고 있다”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더불어 송 과장은 의료인력 검토위원회 설립 필요성에 공감의 뜻을 표했다.
송 과장은 “의료인력 검토위원회 설립은 앞으로 구성 형태와 운영 방안을 적극 검토 후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 필요성과 방향성은 매우 공감하며 탄력적 움직이 중요하다”고 동의했다.
이어 “복지부는 2025학년 입학 정원부터 의대 정원 확대를 목표해 기존 연구와 함께 현재 논의된 연구를 우선 적용해 시행하고, 오늘 제안된 의견을 토대로 추가 구성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