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민·구교윤·최진호 기자] 유례 없는 의정 갈등 정국 속에서 진행된 2025년 상반기 레지던트 1년차 모집 결과는 참담하기 짝이 없었다.
정부가 전공의 복귀를 위해 비상 카드로 꺼내든 '전‧후기 구분 없는 일괄 모집', '2지망 제도' 역시 무용지물에 가까웠다.
지난 2024년도 지원율과 비교하면 이번 전공의 모집은 부정할 수 없는 실패로 끝났다는 평가다.
9일 데일리메디가 전국 수련병원 1년차 레지던트 지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조사에 응한 48개 병원 전공의 충원율은 6.1%에 불과했다. 정원 1412명 중 지원자는 86명에 그쳤다.
과목별 '빈인빈 부익부'…산부인과·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 '소멸'
이번 모집에서 기피과들은 젊은의사들의 외면이라는 암울한 현실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대다수 수련병원에서 필수의료로 분류되는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를 받지 못했다.
비공개 방침을 결정한 병원을 제외하고 소아청소년과 지원자는 제주대병원(1명)이 유일했다. 또 비인기과로 분류되는 병리과 지원자 역시 국립암센터 1명, 순천향대천안병원 1명이 전부였다.
반면 인기과로 불리는 '피·안·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을 포함해 '정·재·영'(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은 선전하는 모습이었다.
인기과 역시 정원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다른 진료과목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실제 좋은삼선병원은 3명이 정형외과에 지원했으며 명지병원, 중앙보훈병원, 동국대일산병원, 순천향대천안병원 등에서도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지원자가 다수 존재했다.
또 강원대병원, 노원을지대병원 등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일부 모집이 가능했다.
지방의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인기과 지원자는 소수지만 꾸준히 있었다. 문제는 기피과인데 이번에는 문의조차 없었다"며 상황을 전했다.
올해 인기과와 기피과 양극화 현상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그 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본지 조사에 따르면 작년 1년차 레지던트 모집결과(수련병원 80곳 조사) 기피과에서도 소수의 지원자가 있었으나[관련기사] 올해는 사실상 '지원자 실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비공개 방침을 내세운 빅5 병원(서울대, 세브란스, 서울아산, 삼성서울, 서울성모병원) 지원율을 더해도 이 같은 흐름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 5개 병원이 지원자의 신원이 공개될 경우 자칫 피해를 볼 수 있어 구체적인 지원 현황을 밝히지 않았지만 한 자릿수에 그친 탓이다.
전·후기 일괄 모집·2지망 제도 등 달라진 전공의 모집 시스템도 '속수무책'
이번 모집에서는 정부가 꺼낸 특례 카드도 소용이 없었다.
보건복지부 산하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전공의 지원율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전‧후기 구분 없는 일괄 모집, 그리고 2지망 제도 운영을 도입했다.
2지망 제도의 경우 동일병원 1지망 불합격자 중 육성지원 과목과 내·외·산·소 및 응급의학과를 2지망으로 선택한 지원자를 추가로 합격 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하지만 이러한 제도적 변화에도 반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공의 지원율이 급락한 이유는 의정 갈등이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 처단이 포함된 포고령을 발표한 계엄령으로 방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결과로 차후 진행될 인턴 모집과 레지던트 상급년차(2~4년차) 모집 기대치까지 일거에 사라졌다는 비관적인 시선이 나온다.
한 수련병원 관계자는 "문의조차 없어 예상했던 결과보다 더욱 심각했다. 지원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 자체를 하지 않는 분위기가 같다"고 전했다.
빅5 병원 대다수 비공개 방침…처참한 지원율에 수련병원도 '착잡'
대표적인 수련병원인 빅5 병원은 이번에도 비공개 방침을 이어갔다. 지원자가 극소수인 상황에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경우 신원이 특정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병원들은 복귀 의향이 있었던 일부 전공의도 계엄령 사태와 탄핵 정국 여파 등으로 지원을 주저한 것으로 봤다.
특히 차후 진행될 인턴 모집과 레지던트 상급년차(2~4년차) 모집 기대치까지 일거에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한 병원 관계자는 "문의 전화가 있었으나 최종적으로 지원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앞서 계엄령 사태로 인해 추이를 지켜보자는 판단이 선 것 같다"며 "전공의 미복귀에 따른 후유증을 대비해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