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사고로 병원에 내원한 환자가 적절한 검사와 치료를 받지 못해 사지마비에 이르렀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서 법원이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했다.
의료진이 경추 손상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아 검사가 소홀했으며, 전원 과정에서의 조치도 적절하지 않았다는 판단이다.
서울고등법원 인천제3민사부(재판장 기우종)는 지난달 19일 낙상 사고로 병원에 내원한 환자가 사지마비에 이르렀다며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병원의 과실을 일부 인정하고 2억4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망인 A씨는 지난 2018년 8월 5일 오전 3시경 배수로 도랑 밑으로 넘어져 낙상 사고를 당한 후 가족에게 발견됐다.
당시 이마에 상처가 나 있었으며, 오전 5시경부터 침을 흘리고 몸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보였고, 구토 및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등 신경학적 이상이 의심되는 상태였다.
가족들은 이런 증상을 보고 정오께 119에 신고했고, A씨는 약 40분 뒤 119구급차를 통해 B병원으로 후송됐다.
A씨가 B병원에 내원할 당시 의식이 흐릿하고 졸려 하는 기면 상태였으며, 병원 의료진은 흉부·뇌·복부 CT와 경추 X-ray 검사를 시행했다. 그러나 경추 CT는 촬영하지 않았다.
뇌 CT 검사에서 두개골 일부가 골절되고, 뇌를 둘러싼 막 아래에 출혈이 있는 것이 확인됐지만, 경추 손상 여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병원 측은 A씨의 보호자들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며 경과 관찰을 위해 입원을 권유했으나, 보호자들이 연고지가 있는 C병원으로 전원을 희망했다. 이에 따라 A씨는 오후 3시 20분경 구급차로 이송돼 오후 5시 34분경 C병원에 도착했다.
C병원에 도착한 A씨는 목과 팔다리에 통증을 호소했고, 이후 의료진이 오후 7시 25분경 경추 CT 검사를 시행한 결과, 6·7번 경추의 부분적 탈구가 확인됐으며, 오후 11시 50분경 시행한 경추 MRI 검사에서는 탈구 부위 주변의 신경이 손상된 흔적이 발견됐다.
결국 A씨는 사지마비 상태에 이르렀고, 장기간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2024년 7월 사망했다.
유족들은 "병원이 적절한 검사를 시행했다면 사지마비를 막을 수 있었으나, 검사 없이 환자를 전원했다"며 B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액 약 13억4399만원을 청구했다.
1심 "병원 과실 인정…책임 비율 50% 적용해 7억3578만원 배상"
1심 재판부는 B병원의 과실을 인정하고, 병원이 유족에게 7억3578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B병원 의료진은 낙상으로 인한 두부 손상의 경우 경추 손상을 당연히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그러나 경추 CT를 촬영하지 않고 경추 X-ray만 촬영한 것은 부적절한 조치였다"고 지적했다.
또 흉부 CT 영상에서도 경추 골절이 확인될 가능성이 있었으나 이를 진단하지 못한 점, 경추 손상을 확인하고 적절한 보호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전원 과정에서 이를 시행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병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A씨가 사고 당시 이미 경추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높고, 이후 경추를 고정하고 검사를 진행했더라도 사지마비를 완전히 막을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며 병원의 책임 비율을 50%로 제한했다.
2심, 동일한 책임 비율 적용…청구 변경으로 배상액은 낮아져
병원 측과 유족 측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은 1심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B병원 의료진이 낙상으로 인해 A씨가 경추를 비롯한 여러 부위에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면, 추가 검사를 시행하고, 전원 과정에서 경추 손상이 악화되지 않도록 고정하는 등의 최소한의 조치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하며 병원 측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A씨가 사망 후 진행된 2심에서 사망과 병원 과실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이후 6년이 지나 환자가 사망한 점, 정확한 사인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병원의 과실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병원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다만 2심에서 유족 측은 당초 손해배상액을 1심의 절반 수준인 약 6억1086만원으로 청구하면서 최종 배상액은 약 2억4173만원으로 줄었다. 유족 측이 항소심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치료비 등 손해 항목을 줄이고 위자료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청구 구조를 바꿨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