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신용수 기자] 영국‧이탈리아‧덴마크 공동 연구팀이 고지혈증 치료제 ‘페노피브레이트’가 코로나19 감염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최근 주춤했던 약물 재창출을 통한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이 다시금 활발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국 버밍엄대‧킬대, 이탈리아 산라파엘과학 연구소, 덴마크 코펜하겐대 등 공동 연구팀은 페노피브레이트와 그 활성 상태인 ‘페노피브릭산’이 인간 세포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최대 70%까지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파마콜로지’(약리학의 선구자) 8월 6일자에 발표헀다.
페노피브레이트는 고지혈증 치료에 흔히 쓰는 약제로, 1993년 다국적제약사 애브비가 개발‧허가받았다. 현재 국내에서는 원조 제품뿐만 아니라 제네릭(복제약)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국내 출시된 페노피브레이트 성분 포함 제품은 총 60종, 이중 페노피브레이트 단일성분제제는 총 47종이 있다.
활성 상태인 페노피브릭산의 경우 한미약품에서 특허를 갖고 있었지만, 한국유나이티드가 2018년 특허 회피에 성공해 2019년 제네릭 제품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현재 앞서 두 회사 제품을 포함, 총 4개 제품이 페노피브릭산 성분으로 허가를 받았다.
페노피브레이트 재발견과 함께 일각에서는 약물 재창출이 다시 한번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후보물질을 선별하는 스크리닝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데다 허가절차가 신약 개발 대비 비교적 쉬운 까닭이다.
일반적으로 신약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3단계의 임상을 거쳐야 한다. 임상1상에서는 약제 성분 자체 안전성을 1차적으로 확인한다. 임상2상에서는 본격적으로 약 효능과 안정성 등을 확인해 대규모 임상 진행이 가능한지 확인한다. 임상3상에서는 임상2상 결과를 대규모 임상을 통해 재검증한다.
하지만 약물 재창출의 경우 이미 기존에 허가받은 약물인 까닭에 이미 약제 성분 안전성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다. 임상 1상에서 확인해야 할 사항이 대폭 줄어들게 된다. 심지어 임상1상을 건너뛰고 2상부터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약회사 관계자는 “약물 재창출은 신약보다 임상 진입 자체가 훨씬 수월할 뿐만 아니라 투자비용 측면에서도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며 “백신에서 이미 증명됐듯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상황에서는 속도가 최우선이다. 가장 먼저 치료제를 내놓는 회사가 시장을 가져갈 수밖에 없다. 약물 재창출로 시선이 쏠리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일어나던 지난해 전 세계 제약사들은 약물 재창출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램데시비르를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를 보인 제품은 없었다.
램데시비르는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가 개발 중이던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로, 임상3b상에서 효과성을 입증하지 못해 개발 중단됐다. 하지만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상황이 급반전했다. 이후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약 50여개 국가에서 코로나19 치료 목적으로 긴급승인됐다. 우리나라 식약처도 지난해 5월 렘데시비르를 긴급 사용 승인했다.
반면 클로로퀸의 경우 대표적인 약물 재창출 실패 사례로 꼽힌다. 클로로퀸은 지난해 3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이 약을 ‘게임 체인저’로 극찬한 뒤 미국에서 긴급승인을 받으면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코로나19에 대한 약효가 미미할뿐만 아니라 심혈관계 부작용이 심각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승인 취소됐다.
국내서도 약물 재창출에 대한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다. 다만 아직 조건부 허가 벽을 뚫는 데 성공한 치료제는 없었다.
현재 임상2상을 마친 국내 약물 재창출 치료제로는 ▲대웅제약 코비블록(성분명 카모스타트) ▲신풍제약 피라맥스(피로나리딘) ▲종근당 나파벨탄(나파모스타트) ▲부광약품 레보비르(클레부딘) 등이 있다.
이들 중 종근당 나파벨탄의 경우 지난 3월 조건부 승인을 신청했지만 유효성 입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발됐다. 이후 종근당은 나파벨탄 임상3상 시험계획을 식약처에 제출, 승인받았다. 신풍제약의 경우 피라맥스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신청하지 않고 임상3상 신청으로 직행했다.
대웅제약 코비블록과 부광약품 레보비르는 현재 임상2상을 마친 뒤 조건부 허가 신청을 검토 중이다. 대웅제약과 부광약품은 우선 진행 완료한 임상2상에 대한 분석이 끝난 뒤 조건부 허가 신청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