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의료계에는 거센 폭풍이 연이어 불어닥쳤다. 국내 최대 규모 병원에서 수술할 의사가 없어 직원이 사망하고, 대학병원 소아응급실은 근무할 의사가 없어 줄줄이 문을 닫았다. 필수의료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이 도심 한복판에서 집단 사고를 당했고, '더 살릴 수 있었지만 살리지 못했던' 재난의료시스템 또한 재점검이 시작됐다. 최근에는 의료법에서 '간호법'이란 이름으로 빠져나온 간호사 직역만을 위한 법안의 제정을 놓고 보건의료계가 두쪽으로 갈라져 의료대란이 실현될 위기에 처해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3년 4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종료됐지만 국내 보건의료 환경은 여전히 소용돌이 속이다. 데일리메디가 지난 1년 간 보건의료계에 파장을 일으킨 주요 사건 및 윤석열 정부가 내놨던 대책을 정리했다. [편집자주]
대형병원 간호사 사망사건과 필수의료 '민낯'
2022년 7월 24일 국내 최대 규모 서울아산병원 소속 간호사가 근무 중 두통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이 사건은 약 일주일 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고인은 뇌동맥류가 터지는 지주막하 출혈이 발생했지만, 당시 병원에 수술이 가능한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정부는 당해 8월 송파구 보건소, 서울아산병원을 대상으로 의료법 등 위반 여부, 진료 전(全) 과정, 고인의 근무환경 등을 점검하고 나섰다.
나아가 해당 사건은 '필수의료 살리기'를 위한 논의를 불러왔고 정부는 필수의료 TF를 발족하면서 근본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의료계에서는 필수의료 합류를 위한 논의가 뜨거워졌고 이 열기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전까지 필수 진료과로 불리던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외에도 어떤 분야가 필수의료에 해당하는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등 의료계의 호소를 정부가 본격 청취하기 시작했다.
10.29 이태원 참사와 재난의료시스템
2022년 10월 29일 밤 서울 이태원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던 시민 159명이 사고를 당했다.
당시 서울, 경기권역 거점병원 소속 재난의료지원팀(DMAT) 15개팀이 출동했지만, 사고현장과 가장 가까웠던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대부분의 사망자가 몰렸다.
이에 미흡한 환자이송, 컨트롤타워 간 소통 부재, 현장통제 부재 등이 주요 문제로 지적되며 재난의료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사건 후 야당 정치권에서는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이 행정안전부, 소방당국으로부터 적절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해 DMAT 대응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는 "현장과 DMAT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인력·장비·확충 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책임 소재 논란이 의료계까지 번지면서 공분이 일기도 했다. 현장 출동 DMAT 중 일부 전문의들이 경찰 수사를 받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올해 3월 복지부는 '제4차 응급의료기본계획'을 발표, DMAT의 활동 보호를 위한 법제화를 추진하는 한편 비상대응매뉴얼 준수 의무 및 위반 시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
문닫는 소아응급실···소청과 붕괴와 필수의료 재점화
의료취약지인 지방 뿐 아니라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들도 소아응급의료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초 가천대 길병원이 소아청소년과 입원진료를 중단한다고 공지했고, 강남세브란스병원 등 다수의 대학병원이 전공의 등 인력 부족으로 소아응급진료를 연이어 축소했다.
이러한 가운데 2023년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16%로 곤두박질쳤다.
매일 문 여는 시간에 찾아가 대기하는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는 동네 소아과도 줄줄이 사라지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소청과 병·의원 617곳이 개업했고, 662곳이 폐업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3월 기준 전국 75개 시군구는 아예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없거나 1곳만 있는 상황이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급기야 올해 초 "소아과 간판을 내리겠다"며 폐과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간호사 사망 사건에 이어 소아청소년과 존폐 위기까지 불거지자 정부는 필수의료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심뇌혈관질환 진료체계 개편 ▲위험도·중증도에 따른 산모·신생아 진료체계 개편 ▲ 중증·응급부터 일차진료까지 소아 진료기반 확충 ▲전공의 배치기준 개편 및 병상관리 대책 마련 ▲불가항력 의료사고 국가책임 강화 등이 골자다. 복지부에는 전담조직인 필수의료총괄과도 신설됐다.
간호법, 사상초유 직역 갈등···거부권 행사→피할 수 없는 의료대란?
2023년 4월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간호법과 의료인면허취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사상 초유의 보건의료계 직역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정부가 중재안을 제시했지만 이는 반영되지 않은 채 간호법이 통과되자 대한간호협회를 제외한 13개 보건의료 직역단체는 대통령거부권을 촉구하며 단식투쟁 및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간호협회는 대통령거부권이 행사될 시 단체행동을 예고하며 맞불을 놓기도 했다.
제정이 눈 앞이었던 간호법은 결국 좌초를 겪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16일, 국무회의에서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간호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한다"며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재의 요구)을 행사했다.
이에 15일 내 국회로 다시 돌아가 재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 때 본회의 통과 시 보다 더 까다로운 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면 간호법은 폐기 수순을 밟는다.
간호협회는 즉각 들고 일어나 "대통령 본인의 공약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며 의사의 불법의료행위 지시 거부, 총선기획단 출범 등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본회의를 이틀 앞두고 '간호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발표했던 정부는 간호사 단체 달래기 및 현장 의료공백 발생 방지책 마련으로 분주하다. 16일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간호사 처우 개선은 간호법과 무관하게 국가가 책임지겠다"며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 간호사 근무 환경을 국가가 책임지고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