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극복을 돕기 위해서는 ‘유전상담 제도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서비스 활성화 전제조건으로 유전상담을 의료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과 한국희귀질환재단(이사장 김현주)은 지난 5월 31일 ‘유전상담 활성화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유전상담 서비스 제도화를 촉구했다.
‘유전상담’은 질환의 유전적 요인이 환자와 그 가족에게 미치는 의학적, 심리적 영향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과정이다.
희귀질환은 대부분 유전성 질환으로, 치료제가 없고, 치명적 장애를 초래하는 만큼 부모를 포함한 가족 중에서 비슷한 질환을 가진 사람이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유전상담은 가족력과 환자의 병력을 통해 특정 유전질환 위험을 평가하고, 유전질환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함으로써 환자가 자신에게 알맞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진료시간이 3~5분 정도에 불과한 국내 대학병원 여건 상 의사가 30분 이상 소요되는 유전상담을 급여 없이 제공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얘기다.
한국희귀질환재단 김현주 이사장은 “유전상담은 최소 30분 이상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수가 없이는 현실적으로 활성화 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나라도 유전상담사를 배출하고 있지만 행위코드가 없다보니 어렵게 배출한 상담사들이 재인증을 받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특히 “국내 의료현장에서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정착될 수 있도록 의료행위 코드를 신설해달라”고 촉구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이범희 교수는 ‘유전상담 활성화를 위한 운영체계 구축 방안’이라는 발제를 통해 “희귀질환은 가족을 포함한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범희 교수는 “환자 가족이 요구하는 것은 30분 이상의 설명인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팀으로 시간을 갖고 정서적인 안정까지 제공하는 유전상담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유전상담 서비스 활성화를 위한 교육과정 확대 필요성도 제기됐다.
아주의대 의학유전학과 정선용 교수는 일본 유전상담 교육과정과 의료서비스 현황을 소개하며 한국도 유전상담 서비스 확대를 위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유전상담외래', '유전외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임상유전전문의와 상담사, 간호사가 팀을 이뤄 유전질환 상담·진단을 진행하고 환자를 전문적으로 관리한다. 일본 전국에 127개 의료기관이 유전상담을 하고 있다.
유전상담이 의료서비스로 인정받기 때문에 비급여로 진료비 청구도 가능하다.
초진은 1시간에 9900엔(약 9만3400원)에서 시작해 30분마다 4950엔(약 4만6700원)이 추가된다. 재진은 15분당 2530엔(2만3800원)이다.
도쿄대학병원이나 오사카대학병원, 규슈대학병원 등 전국 주요 대학병원이 비슷한 규모로 유전외래 관련 진료팀을 운영 중이다.
정부도 희귀질환자들을 위한 유전상담 활성화 필요성에 공감했다.
질병관리청 이지원 희귀질환관리과장은 “유전상담 필요성에 공감하고 환자와 가족에게 유전상담이 여전히 미충족 수요여서 관련 지원 요구가 크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부터 유전상담체계 운영지원사업을 시작했다”며 “희귀질환자 거주지 중심으로 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도록 사업을 확대, 고도화해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 정성훈 보험급여과장은 “유전상담 서비스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제도화에 대해서는 건강보험제도 특성을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권 진입을 위해 고민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토론회를 공동 개최한 신현영 의원은 “유전상담은 환자와 가족에게 의학적, 심리적 이해를 돕는 소통의 과정”이라며 “유전상담의 제도적 안착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