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한 한의사에게 10여 년만에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현대 의료기기 사용 주체 범위 및 의료법 상 허용된 면허 범위에 대한 새로운 판례가 생겨났다.
한의사 A씨가 지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한의원에서 68회에 걸쳐 초음파 진단기기로 환자를 진료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게 이 오랜 사건의 시발점이다.
2023년 9월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항소9부(부장판사 이성복)는 A씨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판결을 내렸다.
이는 지난해 12월 상고심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천대엽 대법관)가 파기환송키로 결정한 판단을 인용한 것으로, 앞서 유죄 결론을 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원심이 뒤집힌 것이다.
결국에는 초음파 기기를 사용한 A씨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재판부 시각이다.
최종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한방부인과 진료 과정에서 환자에게 생소한 한의학 용어 대신 서양의학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를 토대로 서양의학적인 진단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 시각은 A씨 행위가 주요 쟁점인 ‘한의학적 원리에 입각하지 않았다’, ‘보건위생상 위해(危害)를 발생시켰다’는 지적에 대해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재판부 “의사-한의사 초음파 다르다”는 피고 주장 인정
A씨는 그동안 “초음파 진단기기 원리는 서양의학이 아닌 물리학에 기초한다”며 “의사 초음파 검사와는 다른 한의학적 방법에 따른 의료행위로 한의사도 충분한 교육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1·2심에서는 이러한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벌금 80만원을 선고했었다.
1심에서 재판부는 “한의사가 초음파를 사용할 경우 보건위생 상 위해(危害) 우려가 있다”고 판시했다.
마찬가지로 A씨 항소를 기각한 2심(2016년)과 달리, 지난해 12월 열린 상고심에서 대법원은 A씨 손을 들어줬다. “한의사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의 규정이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해 진단한 게 한의학적 원리에 의하지 않았다거나 통상의 의료행위 수준을 넘어서는 위해를 발생시킨 사실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한의대에서도 충분히 영상의학 등 실무교육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기를 한의학적 진단 ‘보조’ 수단으로 사용한 행위를 불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재판부가 불식하고 나선 해당 쟁점에 대해 의료계는 그동안 강력하게 비판을 제기했고 막판에는 단체행동에 나서는 등 반발감을 표출했다.
A씨가 약 2년간 초음파 진단기기를 무려 68회 사용했음에도 환자의 자궁내막암 발병 사실을 제때 진단하지 못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없다’고 볼 수 있냐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대한의사협회는 “재판 과정에서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무면허 의료행위로 국민건강에 심각한 위해를 끼칠 수 있음이 입증됐음에도 이번 판결은 명백한 이런 사실마저 묵과했다”고 일갈했다.
또 “의사 및 한의사 면허범위를 규정한 의료법을 송두리째 무시했다”며 “무자격자가 함부로 초음파 진단기기를 사용하는 것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강력 대응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