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흔히 ‘영웅(英雄)’은 보통 사람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응급실 뺑뺑이’ 등 초유의 위기 상황에 놓인 대한민국 응급의료에도 ‘영웅’은 존재한다. 바로 4년 전 격무 끝에 운명을 달리한 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다.
그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면서 대한민국 응급의료 관련 정책 분야에서 밤낮 없이 열정을 불사르던 사람이었다.
2010년 국립의료원이 법인화되면서 그는 공무원으로 보장된 자리와 위치를 버리고 당시 의료원 직원으로의 잔류를 선택했다.
낙후된 응급의료체계를 고쳐보겠다는 일념 하에 작은 사무실에서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면서 권역외상센터 구축, 닥터헬기, 국가응급환자진료정보망 구축 등 굵직한 성과를 남겼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1조에는 ‘모든 국민들이 응급상황에서 신속하고 적절한 응급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에서 영웅이 과로로 쓰러지고 응급진료를 받지 못한 채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그가 운명을 달리한 장소는 본인이 열정을 쏟아내던 병원 내 사무실이라는 점에서 비통함을 더한다.
윤한덕 센터장이 세상을 떠난지 4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응급의료는 ‘응급실 뺑뺑이’라는 안타까운 사고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많은 응급환자들이 수용 가능한 응급실 찾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다양한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으나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응급의료시스템에는 아직도 영웅들이 존재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응급실에서 확진자를 수술하던 의료진, 닥터헬기를 타고 응급 현장에 출동하는 의료진, 이태원 참사와 같은 재난 현장에 맨몸으로 출동한 의료진 모두가 영웅이다.
특히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러한 모든 일을 조정하고 지원하는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역할과 중차대함은 부연이 필요치 않다.
2000년 국립중앙의료원에 위탁된 중앙응급의료센터는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을 국민들과 함께 해 왔다.
그러나 ‘중앙응급의료센터’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故 윤한덕 센터장의 죽음 당시, 그리고 얼마 전 이태원 참사 때 잠깐이었다.
대규모 사상자가 나온 이태원 참사에서 중앙응급의료센터는 24시간 상황실을 운영하며 현장을 지원하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국민들은 중앙응급의료센터가 우리나라 응급의료 컨트롤 타워라고 인식했겠지만 실상은 공문서에 이름조차 드러나지 않는 모호한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른다. 이는 역으로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책임있는 주체여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전개와 영웅을 원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시스템에서의 영웅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모든 시스템은 주춧돌을 놓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우리는 아직 그 주춧돌조차도 놓지 않았다.
현재 국회에서는 여야가 공히 응급의학계 숙원인 응급의료 정책을 전담할 독립기구 출범을 추진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응급의료 정책 수립 및 사업 추진을 위한 전담기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 기인한다.
중앙응급의료센터의 완연한 독립을 보장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은 응급의료 국가 책임제의 마중물이자 주춧돌이다. 입법의 필요성과 당위성은 차고도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