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 혁신신약의 신속한 심사·출시를 위한 규제개혁이 정권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심사 주권은 확립되지 못했고 허가는 지연되고 있는 느낌이다.
암·희귀질환 등을 대상으로 혁신신약 신속 출시를 위한 윤석열 정부의 의약품 규제개혁 사업이 2년 차를 맞는 등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일선 현장 체감도는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일동제약과 일본 시오노기제약이 공동개발한 경구용 코로나 치료제 '조코바'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조코바는 지난 2022년 11월 일본에서 긴급사용승인을 받았지만 국내에서는 불발됐다. 이후 일동제약은 지난해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정식 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아직도 심사 중이다.
혁신신약을 개발해 신속심사를 신청했지만 식약처가 심사를 해본 적 없는 의약품이라는 이유로 심사를 받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결국 해당 제약사는 정식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기약 없이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정식 품목허가의 경우 의약품 시급성 및 중요도에 따라 순서가 정해지지 않고 신청한 순서대로 심사가 진행된다.
환자 치료가 지연되는 것은 물론 수 백억원을 들여 신약을 개발한 제약사의 사업 계획 수립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식약처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상황도 비슷하다.
한 제약회사는 국내에서 사례가 드물었던 분야에 대한 임상연구를 진행했는데, 가이드라인에 명시돼 있지 않은 내용에 대해 복지부에 문의해도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해 난항을 겪었다.
결국 해외에서 유사한 사례가 나오고 나서야 다음 단계로 진행될 수 있었다.
식약처와 복지부도 혁신신약 탄생을 위해 규제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다만 '인력 부족', '예산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의 벽에 부딪히면서 개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인력 충원만 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을 구성해 선진화된 기준을 마련하고, FDA 허가만 뒤따를 게 아니라 유연성을 갖춰 판단해야 한다.
업계에서도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여재천 신약개발조합 상근이사는 "연구행정력 부재와 전문성을 살리지 못하는 인사 등 구조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며 "약학, 화학, 법학, 경제학 등 다양한 분야 인재를 채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규제는 무조건 완화가 아닌 선진적으로 강화해야 한다"며 "규제를 강화하면 심사가 늦어지는 게 아니다.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조건에 따라 심사를 신속히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서는 R&D(연구개발)에 대한 투자 결실이 잇따라 구체화되고 있고, 일부 제약사들은 글로벌 빅파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업계에서는 향후 몇 년 이내 국내 기업이 개발한 신약 중 연간 매출 1조원을 넘어서는 글로벌 블록버스터가 탄생할 것이란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정부가 오히려 성장 걸림돌이 돼서는 안 된다. 유망한 국내 제약기업을 뒷받침해 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고 심사 주권을 확립해 진정한 '제약 강국'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