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의료법인 퇴로(退路) 마련이 이번 국회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법안 발의와 폐기가 되풀이 된지 벌써 20년째다.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지난 2021년 4월 발의한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은 3년 가까이 상임위에서 논의 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제21대 국회가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이번에도 법령 개정을 통한 인수‧합병 합법화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오는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선거전에 돌입할 경우 국회는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는 만큼 이번에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1월 15일부터 2월 8일까지 25일간 국회 의사일정을 합의한 만큼 이 기간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의료법인 인수‧합병 관련 법안은 그동안 정치적 이념과 무관하게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에서 추진됐지만 번번히 ‘영리화’ 프레임에 발목을 잡히면서 최종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관련 법 개정 노력의 시작은 참여정부 시절이던 2007년이다. 노무현 정부는 제17대 국회에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당시 개정안에는 영리법인 경영지원회사 설립, 보험회사의 환자 알선 허용 등이 함께 포함돼 있어 거센 반발에 부딪쳤다.
특히 당시 의료민영화의 폐해를 조명한 ‘식코’라는 영화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면서 관련법은 제대로 논의 조차 되지 못하고 자동폐기됐다.
제18대 국회에도 관련 법이 등장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노무현 정부의 의료영리화를 비난하던 이명박 정부가 직접 의료법인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역시나 관련 개정안도 ‘영리화’ 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소멸됐다.
제17대, 제18대 국회에는 정부 주도로 법 개정이 추진됐다면 제19대 국회부터는 국회의원들의 발의로 입법 시도가 이뤄졌다.
이명수 의원은 제19대 국회였던 지난 2016년 새누리당 소속으로 의료기관 간 인수합병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당시 개정안이 상임위원회인 복지위 전체회의를 통과하자 시민사회단체 반발이 거셌다.
의료민영화‧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범국민운동본부와 무상의료실현을 위한 운동본부는 해당 개정안 법사위 상정을 막기 위해 민주당사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이 같은 시민사회단체 등의 반대로 의료기관 인수합병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은 법사위를 넘지 못했고 제19대 국회가 종료되면서 폐기됐다.
제20대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의료기관 부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료기관 간 합병을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의료법인 간 합병을 통해 부실한 의료법인 존속으로 인한 의료서비스 질 저하를 방지하고 지역에 원활한 의료공급을 도모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또한 의료법인 합병으로 해당 의료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 해고되는 등 고용불안을 겪지 않도록 의료법인 간 합병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담았다.
하지만 해당 개정안도 제20대 국회가 끝날 때까지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폐기수순을 밟았다.
국회 관계자는 “이번 제21대 국회에서는 의료법인 인수‧합병 법안이 영리화 프레임 보다는 필수의료, 의대정원 등의 현안에 밀려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만간 총선거 정국으로 접어드는 만큼 아직 상임위에서 논의 조차 되지 못한 해당 개정안은 사실상 자동폐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