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닙니다. 숨이 차거나 기력이 없다고 느껴질 때 '노화'라고 치부하기보단 병원에 내원해 검진을 받아보고 필요 시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아 건강한 일상을 보내길 기원합니다."
은평성모병원 심혈관병원 권오성 교수가 최근 데일리메디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들에게 전한 당부의 말이다.
권 교수는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포기하는 질환'이 아닌 '언제든 좋아질 수 있는 질환'으로 지역사회가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 방치시 2년 내 사망률 50% 육박"
대동맥판막은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서 혈액이 좌심실로 역류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혈액이 제 방향으로 안전하게 흐르도록 하기에 '심장의 문(門)'이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대동맥판막이 좁아지면서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류가 충분히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다. 판막에 칼슘이 쌓이면서 석회화가 진행되는 퇴행성인 경우가 가장 흔하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발생하면 혈액이 이동하는 과정에 장애가 생긴 만큼 심장은 더욱 강하게 수축하는데, 이 과정에서 심장 근육이 비후되고 이로 인해 호흡 곤란, 흉통 및 실신 등의 증상을 느낀다.
권오성 교수는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방치할 경우 2년 이내 사망할 확률 50%에 육박할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다. 급사 가능성도 있는 만큼 적시에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성공률 99%…시술 발전으로 이제는 치료할 수 있는 병"
사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10여 년 전 만해도 '치료할 수 없는 병'으로 여겨졌다.
대동맥판막 협착증 궁극적 치료는 판막에 대한 수술인데 과거에는 개흉(가슴을 여는 수술)을 통한 '외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SAVR)이 유일했다.
그런데 이 시술은 환자 대부분이 고령이거나 기저질환으로 수술이 어려운 탓에 시행이 쉽지 않았다. 특히 4~5시간에 달하는 수술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치료하지 못하는 게 다반사였다.
하지만 가슴을 절개하지 않고 허벅지를 지나는 동맥을 이용해 판막을 교체하는 시술법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치료 옵션이 생기게 됐다. 바로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TAVR, TAVI)'이다.
타비(TAVI) 시술은 대퇴동맥 혹은 심첨부를 천자해 카테터로 대동맥판막에 접근, 생체 조직으로 만든 조직판막을 삽입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0년 최초로 시술에 성공했고 이후 2022년 5월 환자 자기부담금까지 대폭 감소하면서 많은 의료진이 필요 시 적극 고려하는 시술로 자리잡았다.
"지역 특성 고려한 입원-시술-퇴원 선제적 시스템 구축"
은평성모병원은 서울 서북부 지역에서 유일하게 타비 팀을 운영하며 성과를 내고 있는 병원이다.
은평구는 서울에서 65세 노인 인구 비율이 많은 곳 중 하나로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앓는 환자도 많다.
올해 1분기 기준 은평구 65세 노인 비율은 20.25%로 강북구(23.81%), 도봉구(23.17%), 중랑구(20.71%)에 이어 네 번째다.
권 교수는 "지난해 70여 건의 시술을 수행했다. 은평성모병원 환자는 주로 은평구를 포함한 서울 서북부 지역민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제주도와 같이 타비 시술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오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실제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는 2022년 기준 2만1000여명으로 10년 전 4600여명 대비 4배 이상 늘어났다.
은평성모병원 타비 팀은 이러한 추세에 대응하고자 지역 특성을 고려해 입원과 시술, 그리고 퇴원까지 전 과정에 걸친 선제적 시스템을 마련했다.
우선 시술 현장에서 모든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시뮬레이션을 진행해 계획을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으로 조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련한 플랜 A, B, C를 시술을 담당하는 순환기내과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마취과 의사 등 전 팀원이 각자 역할과 책임을 빈틈없이 숙지할 수 있도록 한다.
"국내 최초 우측 쇄골하동맥 통한 타비시술 성공…확장성 확보"
이를 토대로 최근에는 국내 최초로 우측 쇄골하동맥을 통해 타비 시술을 성공하기도 했다.
타비 시술을 위해서는 보통 ▲우측 대퇴동맥 ▲좌측 대퇴동맥 ▲대퇴정맥 등 허벅지 부위에 총 3개 천자를 시행하는데 허벅지를 통한 접근이 어려운 경우 쇄골하동맥을 통해 시술을 시도한다.
하지만 타비 시술에 사용하는 기기는 대부분 대퇴동맥 접근법을 표준으로 제작된 탓에 다른 접근법을 통한 시술 시행 시 안전성 문제가 대두돼 왔다.
권오성 교수는 "우측 쇄골하동맥을 통한 시술 처럼 희귀 접근법은 타비 시술 확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선진국 의료진만 시행할 수 있던 희귀 접근법을 이제 국내에서도 할 수 있게 됐다"며 "향후 유사한 사례를 축적해 더욱 많은 환자에게 치료 기회를 제공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우측 쇄골하동맥 접근법은 의료진 사이에서도 어렵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이는 시행 수가 적어서일 뿐 점차 경험이 쌓이면 국내에서도 많은 의료진이 능숙하게 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권 교수는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더 이상 불치병이 아닌 만큼 국민들의 인식 제고에 기여하고 싶다는 목표도 전했다. '포기하는 질환'이 아닌 '언제든 좋아질 수 있는 질환'으로 대동맥판막 협착증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겠다는 각오다.
그는 "고령환자 분들이 숨이 차거나 기력이 없다고 느껴지면 반드시 병원에 내원해 검진을 받아보고, 필요 시 적시에 치료를 받아 건강한 일상을 보내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접어드는 지금 의료진은 물론 지역사회도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