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의사들은 왜 이 시점에 '정책 제안' 하는가
김찬규 전(前) 원광대병원 전공의
2024.10.06 19:19 댓글쓰기

2024년 2월경부터 시작된 의료파행은 8개월이 경과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 각계에서 의정갈등 해법에 관한 목소리가 나왔지만, 출구지점은 여전히 요원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명확해진 것이 있다.


이번 갈등의 주체는 정부와 의료계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대통령실과 젊은 의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전공의와 의대생이라는 점이다.


이번 갈등 주체, 정부 vs 의료계가 아니라 대통령실 vs 젊은 의사(전공의·의대생) 


대한의사협회는 의료계를 대표하는 법정단체임에도 불구하고 갈등해결에 주도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면, 전공의와 의대생 즉, 젊은 의료인 입장에서 의정갈등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고, 또 잃은 것은 무엇일까?


확실하게 잃은 것은 첫 번째 의료인으로서 자부심이요, 두 번째 미래에 대한 막연한 희망, 세 번째는 사회에 대한 신뢰다.


반대로 얻은 것은 뭐가 있을까? 나는 이번 사태를 통해 젊은 의료인들이 ‘메타인지’에 대해 자각하게 됐다고 생각한다.


‘메타인지’란 발달심리학에서 쓰이는 용어로 자신의 인지 과정에 대해 한차원 높은 시각에서 관찰 및 통제, 판단하는 능력을 말한다.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적용해보자면 보통의 의대생과 젊은 의사들은 의과대학 6년, 인턴 1년 그리고 레지던트 4년 총 11년에 달하는 긴 시간동안 자신의 한계치까지 부하를 받는다.


본인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 없이 병원에서 묵묵히 선배들 길만 뒤쫒았던 관행 스톱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과정 속에 있는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등 여러 경험과 교육을 받으면서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내곤 한다. 마치 피라미드 생태계와 같은 병원에서 그저 묵묵히 선배들이 갔던 길만 뒤쫓을 뿐이다.


하지만 이번사태를 통해 우리는 그러한 발자취가 가지는 의미와 방향성에 대해 요소별로 낱낱이 뜯어서 살펴보게 됐다.


리고 이것이 계기가 돼서 그동안 선배들이 걸어갔던 길을 반드시 따라가야만 하는것인지 의문점을 품기 시작했다.


당장 눈앞에 주어진 과제와 일상에 치여 이 길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이정표만 따라가기 급급하다가, 구글 위성지도로 산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넓은 시야를 갖고서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해 점검하게 된 것이다.


의정갈등을 겪은 젊은 의료인들은 더 이상 자신의 위치를 의료계 내부로만 한정짓지 않는다.


그들은 의료계 내부에서는 학생 혹은 경험이 모자란 수련의에 불과했지만, 사회에서 바라보니 기성세대 의사들과 다름없는 ‘의료전문가’였다.


그리고 ‘의사’라는 하나의 직역인으로서 개개인이 가지고 있던 사명감은 사실은 사회 요구였을 뿐이라는 점까지도 깨닫게됐다.


관례라는 단단한 알을 깨고 나온 젊은 의료인들은 사뭇 낯선 풍경속에서 외로울지언정,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귀중한 경험도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젊은 의사들도 의료정책을 비롯해 수가제도, 의료수요 등 관심 높아지는 계기 마련


대한의사협회에서 진행했던 젊은의사 의료정책 공모전 참여율이 높았던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때 공모전 수상작을 살펴보면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으로 분석한 현행 의료제도 문제점 및 의료계 대응전략’, ‘AGI와 누적데이터를 활용한 의료수요 예측과 건강보험 재정 분배의 최적화 정책’ 등이 있다.


이런 것을 통해 젊은 의사들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의료정책을 비롯해 수가제도, 의료수요에 대해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더불어 그 관심은 인구정책과 공공의료체계 확립등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로 뻗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Pre-ER 스크리닝 네트워크 도입’ 이 분명하게 보여주는 바는 젊은 의사가 의료분배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제언을 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의대교수님 뒷꽁무니를 따르는 학생신분을 탈피했다는 점이다.


"젊은의사들 의정갈등 경험 날갯짓 효과, 10년~20년 후 주목"


어느 집단에서든 다음 세대의 ‘키커’ 육성은 중요한 아젠다이다. 그래서일까 대한의사협회에서는 공모전에 참여했던 젊은의사들을 중심으로 정책자문단을 구성했다.


이는 단편적인 변화에 불과하다. 알을 깨고 나온 젊은 의료인들은 의료외에도 정치, 사회, 경제 등 다양한 방향으로 눈을 돌리고 있고, 그들의 행보는 의정갈등 사태 이전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의학교육 과정 중 배웠던 의사윤리 강령에 전문가로서의 사회적 책무에 관한 내용이 있다. ‘바람직한 의료환경과 건강한 사회를 확립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개선하도록 노력한다.’


의정갈등을 겪은 젊은 의료인들 날갯짓은 아직 미풍일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날갯짓으로부터 나비효과가 나타나 10년, 20년 후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임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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