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독(毒) 묻은 사과 우려"
한승범 상급종합병원협의회장
2024.11.04 06:06 댓글쓰기

연간 3조3000억, 3년 간 총 10조원. 유례없던 거액이 투입되는 상급종합병원 체질 개선 사업 열풍이 뜨겁다. 벌써 47개 상급종합병원 중 18곳이 사업 대상기관으로 선정됐고, 6개 병원은 신청서 접수 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모집기한이 오는 12월 31일까지임을 감안하면 전국 상급종합병원 대부분이 대규모 지원사업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정식 명칭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지원사업'은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질환 중심 병원으로 기능을 확립하고 전공의 의존도를 줄여 ‘임상과 수련’을 균형적으로 발전토록 하는 게 핵심이지만 의료대란 속 급조된 정책인 만큼 우려도 적잖다. 상급종합병원협의회 한승범 회장 역시 “정책 방향에는 공감하지만 성급한 추진으로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대형병원에서 4000병상 증발, 조만간 병상 대란”


한승범 회장은 가장 먼저 ‘병상 대란’을 우려했다. 이번 지원사업의 핵심이 상급종합병원 병상 감축이고, 이는 머지않아 병상 부족 사태로 이어질 공산이 다분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금까지 구조전환 지원사업에 선정된 18개 상급종합병원이 계획한 일반병상 감축 규모는 총 1861병상에 달한다. 


병원별 감축 계획을 살펴보면 서울아산병원이 336병상으로 가장 많고, 세브란스병원 290병상, 부산대병원 128병상, 길병원 107병상, 분당서울대병원 104병상 순이다.


이 외에도 고대구로병원 96병상, 단국대병원 93병상, 아주대병원 86병상, 고대안암병원 86병상, 강남세브란스병원 74병상, 경희대병원 74병상 등을 축소할 예정이다.


정부는 사업 참여 조건으로 수도권 소재 1500병상 이상인 의료기관은 일반병상의 15%를, 그 외 기관은 10%, 비수도권 기관은 5% 수준 감축을 요구했다.


빅5 병원에서만 1200여병상, 전국 47개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이 사업에 참여할 경우 약 4000병상이 한꺼번에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승범 회장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상급종합병원 선호도를 감안하면 별다른 제한 조치 없이 병상만 줄이면 병상 부족 사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반병상을 줄이고 중환자실 등을 늘리도록 하는 취지는 동의하지만 상급종합병원 문턱 높이기 등의 조치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병상대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병원들 입장에서는 일단 계산상으로는 병상을 줄이더라도 보상이 큰 만큼 지원사업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회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게 유리한 것으로 나오다 보니 병원들이 앞다퉈 신청서를 내고 있지만 급증하는 상급종병 의료 수요를 감안하면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들간 또 다른 양극화 우려


이번 지원사업이 또 다른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전했다. 먼저 연간 3조3000억, 3년 간 총 1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지원금이 분배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단순 계산상으로는 47개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참여할 경우 연간 700억원 정도씩 나눠 가질 수 있지만 균등 배분이 아닌 만큼 대형병원들 몫이 커질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정부는 참여 병원들의 중증진료 비중을 50%에서 70%로 올리고, 중증진료 비율 변화에 따른 인센티브 형태로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병상 감축 역시 규모나 비율에 따라 지원금이 달라지는 구조인 만큼 대형병원에 쏠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방향 공감하지만 성급한 정책 도입, 여러 부작용 초래


한승범 회장은 “지방 상급종합병원들은 지원금을 더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며 “구조전환 지원사업이 또 다른 양극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의료인력 양극화도 문제다. 병원들이 정부가 요구하는 중증질환 위주로 진료시스템을 개편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의료인력 충원에 나서면서 의료인력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미 지방 대학병원 교수들을 대상으로 수도권 상급종합병원들의 러브콜이 시작됐고, 상당수 인원이 병원을 옮기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가뜩이나 의료대란 사태에서 시작된 지방 대학병원 교수들의 수도권 이직이 이번 지원사업을 계기로 더욱 가속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러 측면에서 상급종합병원 양극화 및 계층화가 우려되는 게 현실”이라며 “농익지 않은 정책이 자칫 더 큰 화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의정갈등 사태 참담, 개악 아닌 개혁이 되길 희망하지만”


한편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의대협회) 결정으로 관심을 모았던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와 관련해서는 ‘불참’을 선택했다.


너무 많은 단체가 나서기 보다 의학회와 의대협회가 대표성을 갖고 협의체에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특히 전공의들이 병원단체를 중간 착취자라고 인식하는 상황에서 굳이 협의체에 참여해 전공의들의 감정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승범 회장은 “내부 논의 끝에 여·야·의·정 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의학자와 교육자 대표가 협의에 나서는 만큼 병원단체는 물러서 있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협의체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현 사태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세계 최초 수준을 자랑하던 한국의료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며 “이게 과연 국가나 국민을 위해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어 “경영자이자 교육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일련의 정부 정책이 지나치게 성급하게 느껴진다”며 “완급 조절을 통한 연착륙 모색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젊은의사들에게 희망을 앗아간 현실을 통탄했다.


한승범 회장은 “정부는 의료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젊은의사들은 의료 개악으로 받아들이는 게 문제”라며 “미래의료 주역들 정서와 목소리를 살펴야 개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설파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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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11.05 18:27
    의사수는 부족해질테니 늘리자면서 상급종합병원의 병상수는 줄이자는 것은 대체 무슨 논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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