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폐기물 처리방식의 빗장이 풀렸다. 무려 23년만이다. ‘소각(燒却)’ 일색에서 ‘멸균(滅菌)’으로의 대대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예상된다. 사실 한국의료는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지만 유독 그 수려한 의료의 뒷마무리인 폐기물 처리는 한참 뒤처져 있었다. 전세계 의료폐기물 처리방식은 기존 ‘소각’에서 ‘멸균‧분쇄’로 패러다임이 변한지 오래다. 미국, 일본,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심지어 개발도상국들도 의료폐기물의 일정 비율을 멸균분쇄 방식으로 처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2001년 신설된 의료폐기물 멸균분쇄방식 기준이 20년 넘게 바뀌지 않았다. 꿈쩍도 않던 기준은 한 젊은 사업가의 열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법령 개정이 이뤄지며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 아이비티그룹 박민규 대표는 “이제라도 세계적 흐름에 편승하게 된 것은 고무적”이라고 소회를 전했다.
중소병원도 멸균분쇄시설 설치 가능
지난 9월 환경부는 의료폐기물 멸균분쇄시설 설치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하는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그동안 중소병원들에게 사실상 허용되지 않았던 멸균분쇄시설 기준 완화다. 중소병원들의 의료폐기물 처리방식 선택권이 확대됐다는 의미다.
기존 폐기물관리법 시행규칙에는 ‘의료폐기물 배출자가 설치하는 멸균분쇄시설 처분능력은 시간당 100kg 이상 시설’로 명시돼 있다. 2001년 이후 23년째 동일한 기준이 적용 중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적어도 700병상 이상 대형병원 정도는 돼야 이 기준을 충족할 수 있다. 일반 종합병원이나 중소병원들은 원천적으로 설치가 불가하다는 얘기다.
대형병원들 역시 기준에 부합하기는 하지만 대형 멸균분쇄시설 설치를 위해 적잖은 공간이 필요한 만큼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때문에 현재 국내 의료기관 중에 멸균분쇄시설을 가동하는 곳은 분당서울대병원과 용인세브란스병원, 시화병원, 가천대길병원 등 4개에 불과하다.
병원 내 멸균분쇄시설을 설치, 운영하면 기존 의료폐기물 처리 비용의 최대 70%까지 절감할 수 있음에도 과도한 진입장벽으로 저변화 되지 못했다.
박민규 대표는 유해 쓰레기인 의료폐기물의 친환경적 처리 방식에 몰두하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즉각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전세계적으로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탄소배출권’ 도입이 가속화 되고 있지만 유독 우리나라는 이에 대해 둔감한 대응을 보이고 있는 점에 가슴을 쳤다.
우리나라는 의료폐기물 99%가 소각방식으로 처리되고 있어 국제사회의 탄소 절감 추세에 역행하고 있고, 관련 산업 발전도 저해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생겼다.
박 대표는 관계부처인 환경부의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며 필요성을 주장했고, 의료폐기물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제도 개선에 나섰다.
세계적인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담당 공무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은 물론 ESG 관련 행사에 연자로 나서 의료폐기물 멸균‧분쇄 처리방식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설파했다.
민생규제 혁파에 탄력, 3년 만에 결실
지성(至誠)이 감천(感天)이었을까. 요지부동이던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경부가 관심을 보이면서 역으로 박 대표와의 만남을 제안해 왔다.
특히 지난해 국무조정실이 케케묵은 의료폐기물 멸균분쇄시설 설치기준을 ‘민생규제 혁파 대상’으로 지목하면서 제도 개선이 급물살을 탔다.
전세계적 추세인 탄소 배출 절감에도 역행하는 규제인 만큼 정부가 속도감 있게 규제 개선을 추진하겠다는 약속을 내놨다.
국무조정실은 “현실에 맞지 않는 불필요한 규제가 중소병원들 발목을 잡고 있다”며 “다양한 멸균분쇄시설 허용 및 처분능력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무부처인 환경부 역시 “의료폐기물 처리방식 기술 변화를 반영해 연구용역을 거쳐 관련 규정 개정에 나설 계획”이라며 장단을 맞췄다.
그로부터 10여개월 흐른 지난 9월 환경부가 의료폐기물 멸균분쇄시설 설치기준 완화를 선언하면서 3년이 넘는 박민규 대표의 분투가 결실을 맺게 됐다.
박 대표는 “열정으로 시작한 일이 성과를 얻게 돼 감격스럽다”며 “반드시 가야할 길이 틀림없기에 정부도 제도 개선에 나서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폐기물 처리방식 변화는 우리나라 병원들의 ESG 경영에 가장 시급하고 가장 현실적인 문제”라며 “탄소 배출 우려가 적은 멸균분쇄방식 확대가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박민규 대표는 한국의료의 탄소배출권 문제를 상기시켰다.
탄소배출권은 지구온난화 유발 및 이를 가중시키는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로, 배출권을 할당받은 기업들은 의무적으로 할당 범위 내에서 온실가스를 사용해야 한다.
탄소배출권은 유엔기후변화협약에서 발급하며, 발급된 배출권은 시장에서 상품처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가장 활발하게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행 중이며,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부터 한국거래소가 배출권 시장을 개설, 운영하고 있지만 활성화 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병원계에도 ESG 열풍이 불고 있지만 환경(E)과 가장 밀접한 의료폐기물은 여전히 ‘소각’이라는 처리방식이 절대적이라는 지적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해 쓰레기인 의료폐기물의 친환경적 처리방식에 몰두하는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박 대표의 우려다.
박민규 대표는 “글로벌 핵심 의제인 탄소중립 및 순환경제 촉진, 병원 ESG 지속가능 경영을 위해서라도 의료폐기물 멸균분쇄 방식이 활성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보적 글로벌 제품, 국내 독점 공급
그는 견고했던 빗장이 풀린 만큼 국내 의료기관들의 의료폐기물 처리방식에도 대대적인 패러다임 변화가 일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멸균‧분쇄에도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는 만큼 효율성과 안전성, 가성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선 세계보건기구는(WHO)는 의료폐기물 소각 처리 대체기술로 오토클레이브(Autoclave) 방식과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 방식, 마찰열 방식, 화학적 방식 등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오토클레이브(Autoclave)와 마이크로웨이브(Microwave) 방식이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화된 기술이다.
다만 고압, 고온의 증기를 사용해 의료폐기물을 멸균하는 오토클레이브는 폭발 위험성이 내제 돼 있고, 상당량의 물을 소비하는 탓에 안전성과 환경문제에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의료폐기물 멸균 과정에서 고온의 증기로 배출되는 역한 냄새가 가장 큰 애로점이다.
그에 반해 마이크로웨이브 방식은 가압이 아닌 순수 100% 전기방식으로, 처리과정에서 액체유출물이 없으며 안전하고 경제적인 친환경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박민규 대표 역시 마이크로웨이브 방식의 매력에 심취해 관련 분야 세계적 기술을 보유한 프랑스 베르텡社와 손을 잡았다.
아이비티그룹은 프랑스 베르텡(Bertin Technologies)의 한국 공식 파트너로, 국내에 마이크로웨이브 멸균분쇄기를 독점 공급한다.
베르텡의 마이크로웨이브 멸균분쇄기 스터릴웨이브(Sterilwave)는 단일용기 내 분쇄와 멸균이 함께 이뤄지는 일체형 자동 시스템으로, 모든 처리에 30분 남짓 소요된다.
박테리아 아포균을 최대 8 log10으로 감소 시킨다. 이는 우리나라 폐기물공정시험기준(4 log10 감소 이상) 보다 월등한 수준의 멸균력이다.
특히 오토클레이브 방식과 달리 액체유출물이 발생되지 않고 특허 받은 냄새응축기술로 악취 등의 냄새를 저감하는 시스템이 기본옵션으로 장착돼 있다.
또한 슈레이드(Schrade) 방식이 아닌 블레이드(Blade) 방식을 적용, 주사바늘 뿐만 아니라 고밀도 폴리에틸렌이 함유돼 있는 수액용기 등의 미세 분쇄와 유지보수에도 매우 효과적이다.
박민규 대표는 “전세계 중‧소형 마이크로웨이브 멸균분쇄시설 시장에서 독점적 기술을 인정받은 글로벌 제품을 국내에서 독점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멸균분쇄시설 도입을 검토 중인 의료기관은 안전성, 냄새, 공간 활용도 등 종합적인 검토 후 신중하게 제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