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커뮤니티케어’의 효시이자 일본 재활의학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는 고쿠라리하빌리테이션병원 하마무라 회장이 한국 병원들에게 ‘경영 비책’을 공개했다.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국립병원 부원장 역임 후 지방 소도시 작은 병원을 맡아 일본 굴지의 병원그룹으로 성장시킨 지난 26년 세월을 반추하며 정리한 소회였다.
하마무라 아키노리 회장은 최근 열린 한국만성기의료협회 송년회에 특별강연 연자로 나서 ‘우리들이 임하는 만성기 의료와 26년 경영의 발자취’를 주제로 강연했다.
일본에서 봉직의에게 병원 운영을 맡기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경영까지 위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더욱이 당시 고쿠라병원은 상당한 차입금으로 경영지표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였다. 초보 경영자 입장에서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고민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고용된 입장에서 과감하게 설비나 장비 투자를 할 수도, 무리하게 조직을 확대하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상황이었다.
하마무라 회장은 천착을 거듭한 끝에 ‘작아도 존재감 있는 조직’을 목표로 설정하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초고령화 시대에 ‘노인의료’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지만 신체구속과 기능회복에 머물렀던 기존 노인의료 개념을 넘어 ‘재택 복귀’에 기반을 둔 재활을 특화시키고자 했다.
특히 병원에 국한된 재활이 아닌 지역재활 개념을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해 나갔다. 병원과 시설, 지자체가 함께하는 지역포괄케어, 즉 ‘커뮤니티케어’의 시발이었다.
자연스레 병동 구성 모양새도 달라졌다. ‘개호력 강화 병동’, 즉 간병에 기반한 돌봄 수준의 병동에서 적극적인 재활 치료가 이뤄지는 병동으로 변모했다.
실제 하마무라 회장 취임 당시 1/5 수준이던 회복기 재활병동은 현재 4/5까지 늘어났다. 나머지는 아예 장애인 병동으로 할애했다.
물론 어려움도 만만치 않았다. ‘재활’이라는 기능의 단일화로 다양한 질환을 가진 환자, 급격한 악화에 대한 대응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자체적인 환자 유치가 아닌 급성기 병원들에게 환자 수급을 의존할 수 밖에 었었기에 말못할 서러움도 적잖았다.
무엇보다 오롯이 ‘재활’에 중점을 둔 병원 운영 방식에 낯설어 하는 직원들의 의식을 바꾸고, 지역주민과 이용자의 이해를 구하는 게 가장 큰 난관이었다.
솔직히 부차적인 이유 외에 ‘재활’, 그것도 ‘회복기 재활’이라는 제한된 영역에 조직의 명운을 거는게 올바른 방향인지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이 부족했다.
하마무라 회장은 “회복기 재활 중심으로 조직 운영의 방향성을 설정한 이후에도 고민은 계속됐다”며 “시대적 흐름은 맞지만 조직의 순응도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고 술회했다.
초보 경영자, ‘작지만 단단한 조직’ 결심
‘회복기 재활’에 건 조직의 명운(命運)···성공 비책은 사람 그리고 ‘~다움’
하지만 이러한 걱정은 기우(杞憂)였음을 증빙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정들고 익숙한 지역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회복기 재활의 방향성은 일본 정부가 지향하던 지역포괄케어시스템과 맞닿아 있었다.
여기에 존엄을 중시하는 만성기 의료와, 의사‧간호사‧물리치료사‧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 등으로 구성된 팀(Team) 관리체계까지 더해지면서 지역 포괄 재활 시스템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경영지표도 수직상승했다. 10% 내외였던 자기자본 비율을 80%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의료와 돌봄을 아우르는 복합체의 밑그림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현재 고쿠라리하빌리테이션병원은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회복기 재활과 지역 연계 노인의료시스템의 성지(聖地)로 굳건하게 자리매김했다.
하마무라 회장은 이러한 성공가도 기저에 ‘사람’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튼실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으로 직원들을 대했고, 그 확신은 오늘의 고쿠라병원을 만들어 냈다.
실제 그의 곁에는 25년 이상 함께한 참모진이 즐비하다. 참모진 모두 ‘사람’을 중시하는 하마무라 회장의 가치관과 의료의 흐름을 읽어내는 통찰력에 함께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하마무라 회장이 강조하는 또 다른 경영 가치는 ‘~다움’이었다.
노인환자의 단편적 보살핌에 그쳤던 병원이었지만 ‘고쿠라 다움’이라는 문화를 이식하면서 조직 분위기와 열정이 달라졌다.
그는 “사람이 모여 좋은 가치관을 공유하고 실천하려 한다면 조직 발전은 저절로 수반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구성원이 몸 담고 있는 조직만의 문화, 즉 ~다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 병원들 역시 각 조직만이 지향하고 갖추고픈 문화가 있어야 한다”며 “00병원 다움은 그 병원만이 갖고 있는 의술, 서비스, 품격을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하마무라 회장은 ‘Purpose Management’, 즉 가치 경영을 제언했다.
단순한 이윤 추구를 넘어 병원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과 사명이 구성원의 동기 부여는 물론 조직 전반의 전략과 운영에 중심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마무라 회장은 “병원 목적이 명확할 때 구성원은 물론 고객과 시장에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병원 가치와 경쟁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설파했다.
이어 “한국 병원들도 지역사회에서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하다”며 “존재 이유가 확실해야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