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은 보험회사와 계약자 간의 문제다. 그런데 왜 국가가 나서서 이를 조정하려고 하는 건가요"
보건복지부가 최근 발표한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두고 의료계 반발이 거세다. 지규열 대한신경외과의사회 총무위원장은 30일 데일리메디와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실손보험 및 비급여 진료 관련 정책이 의료계 현실을 외면하고 있으며, 오히려 의료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규열 위원장은 "보험사들이 정말 손해를 보고 있다면 실손보험 상품을 계속 판매하고 계약을 갱신하겠나. 절대 그렇지 않다"라며 "의사들 중 일부가 실손보험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지만, 제도 전체를 문제시하고 확대해석하는 건 심각한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손보험이 특히 암 환자처럼 의료 취약지대에 놓인 환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을 강조, 정부의 무리한 개입은 환자의 치료 접근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정책이 의료 현장에 미칠 현실적 파장에 우려감을 전하기도 했다. 지 위원장은 "의료 생태계는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에 의존해 왔다. 그런데 이 구조가 갑작스럽게 무너지게 되면, 도수치료나 물리치료 등에 종사하는 치료사들은 생계가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라고 했다.
이어 "모든 제도 변화는 단계적으로 조정하며 추진해야 하며, 지금처럼 과도하게 밀어붙일 경우 현장에 심각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한신경외과의사회는 지난 27일 성명서를 내고 정부가 비급여 진료를 '적폐'로 간주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강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바 있다.
지 위원장은 “적폐였다면 왜 처음부터 만들어줬나. 이제 와서 적폐라고 하는 건 모순"이라며 "그런 제도를 처음부터 허용하고 설계한 정부 역시 책임이 있다"고 단언했다.
그는 비급여 진료에 대해 "일종의 제2의 건강보험 역할을 해왔다. 현재 의료 제도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다리 같은 기능을 한 셈"이라며 "이제는 그 제도들이 의료계를 옥죄는 구조가 돼버렸다. 마치 독이 든 성배를 쥐고 있는 상황이다. 마시자니 독이고, 던져버리자니 정말 힘들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무리한 실손보험‧비급여 개선책, 의료 생태계 파괴 초래”
“제도 허용하고 설계한 정부 역시 책임…‘적폐’로 간주 말아야”
“대형마트-구멍가게 경쟁하는 구조…의원급만 문제 삼는 건 사실왜곡"
의료 자율성 침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지 위원장은 "진료권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가가 제대로 책정돼 있다면 비급여 진료가 이렇게까지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고, 3분 진료도 없을 것"이라며 "지금처럼 과밀한 진료가 반복되는 건 낮은 수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료계 요구의 핵심은 수가의 현실화다. 지 위원장은 "지금처럼 업무 강도와 위험도가 높은 진료과들이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필수의료를 강화하겠다는 말도 성립하지 않는다"며 "이런 진료과의 수가를 현실화하고, 거기에 맞는 보험 지원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비급여 진료와 실손보험 청구를 동네의원만의 문제로 인식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지 위원장은 "실손보험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건 동네의원만이 아니"라며 "대학병원에서도 실손보험 청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이를 통해 상당한 수익을 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의료 현실은 마치 거대 마트가 동네 구멍가게와 경쟁하는 구조다. 실손보험과 비급여 진료 문제를 단순히 규모 작은 의료기관에만 책임을 묻는 건 사실 왜곡"이라고 말했다.
지 위원장은 "정부는 의대 정원을 증원하려 하지만, 정작 대학병원에서 필요한 의사는 많지 않고 보상도 충분치 않다"며 “결국 많은 의사들이 바깥으로 나와 과다한 경쟁을 하게 되는 구조다. 의료계를 둘러싼 현실을 바로 보지 않고 제도만 손보겠다는 접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