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형병원들이 인공지능(AI) 기술을 의료 현장에 접목하며 병원 서비스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AI 기술을 단순한 보조 도구가 아닌 진료·행정·연구·교육 전반을 아우르는 혁신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평가다.
수도권 빅 5 병원, 앞다퉈 인공지능 도입·고도화
6일 병원계에 따르면 서울아산병원은 최근 국내 최초로 의료진과 환자 대화를 실시간으로 기록·요약해 의무기록까지 자동 작성하는 AI 기반 진료 음성인식 시스템을 전(全) 진료현장에 도입했다.
기존 보이스 EMR(전자의무기록)이 의료진 음성만을 텍스트화하던 방식과 달리 이 시스템은 환자 음성까지 인식해 보다 정밀한 진료 기록을 가능케 한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 2023년부터 정형외과, 성형외과 외래에서 시범적으로 시행했다.
이후 효율성과 정확성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 종양내과, 이비인후과, 정신건강의학과 등 16개 진료과를 비롯해 응급실, 정형외과 병동 등 모든 진료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구축을 완료했다.
특히 응급실이나 병동 등 빠르게 판단이 필요한 환경에서도 실시간 대화 기록이 가능해 환자 안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고려대의료원도 글로벌 헬스케어 정보업체 엘스비어와 협력해 AI 기반 임상 의사결정 지원 도구인 '클리닉컬키(ClinicalKey)'를 도입했다.
지난 2021년 국내 최초로 클라우드 기반 의료시스템을 도입한 바 있는 고대의료원은 이번 클리닉컬키 AI 도입을 통해 고품질 진료 및 연구, 교육 전략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클리닉컬키 AI는 엘스비어가 선보인 기술로 개인화된 대화형 검색을 통해 의료진에게 방대한 양의 의료정보 중 사용자가 필요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제공한다.
의료진이 최적의 진료를 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엄선된 의료 콘텐츠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되는 근거 기반 연구자료를 토대로 설계됐다.
병원은 향후 근거 기반 의료 AI 의사결정 지원도구가 진료·연구·교육 분야 효과성 및 효율성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지난달 네이버와 협력을 통해 국내 최초로 '한국형 의료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고 그 성과를 공개했다.
이 모델은 한국 의사국가고시 최근 3년 데이터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결과, 86.2% 정확도를 기록하며 오픈소스 모델 중 최초로 실제 의사 평균 정확도(79.7%)를 뛰어넘는 성과를 거뒀다.
전 세계적으로 의료 거대언어모델에 대한 연구개발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나, 기존 모델은 주로 서구권 의료 지식에 최적화돼 있고, 한국어로 된 의료텍스트나 의료법 및 진료지침 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서울대병원은 한국어와 영어를 혼용하는 국내 의료진 요구를 충족하고, 전문의 수준 의학지식과 약어·줄임말 등 언어적 특성을 이해하는 거대언어모델 필요성을 절감하고, 지난해 3월 모델 개발에 착수했다.
특히 올해 이 모델을 더욱 발전시켜 한국 의료 관련 법률 및 국문 논문 초록, 학회 진료지침 등을 통합하고, 의학용어 약어 사전과 용어 표준화 작업을 진행했다.
서울대병원은 이 모델을 기반으로 진료과별 특화 데이터셋, 지식그래프 기반 생성 시스템(RAG), 다학제 에이전트 프레임워크 등을 구축해 한국 의료 환경에 최적화된 AI 의료 솔루션을 구현해가고 있다.
삼성서울병원도 지난해 환자들이 24시간 365일 의무기록 사본을 비대면으로 신청하고 발급받을 수 있는 AI 기반 RPA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에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의무기록 사본 발급이 불가능했다. 새 시스템은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한 의무기록 발급시스템(Robotic Process Automation, RPA)을 고도화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도록 편의성을 높였다.
병원 운영 시간에 맞춰 방문하지 않고도 연중무휴로 언제, 어디서든 의무기록 사본을 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
이밖에 용인세브란스병원은 지난달 인공지능(AI) 도슨트 키오스크 운영을 시작했다. AI 도슨트 키오스크는 대규모언어모델 기반 음성인식(STT) 기술을 적용해 환자와 내원객에게 병원 이용 관련 정보를 편리하게 전달한다.
병원은 향후 진료과 안내, 진료비 조회 등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며, 이전에는 5G 기반 AI 방역로봇 '비누(BINU)' 도입을 통해 방역 및 안내 기능을 강화한 바 있다.
한림대학교의료원 역시 최근 고해상도 스캐너와 AI 기반 분석 소프트웨어로 구성된 디지털 병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디지털화된 병리 데이터는 장기 보관이 가능해 추후 연구 및 교육 데이터로도 활용이 가능하며, 물리적 공간이 필요 없어 데이터 관리에도 용이하다. 의료원은 앞으로 산하 병원에 확대해 디지털 병리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협진할 계획이다.
병원들은 AI 기술을 도입하면서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환자 중심 서비스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AI 기술이 빠르게 적용되면서 의료 서비스 효율성과 환자 만족도가 동시에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의료 전 과정에 AI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진료 질을 한층 끌어올릴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