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 환자를 위한 헌신이 충분조건인 줄 알았다. 인류애와 봉사정신으로 최선을 다해 환자를 간호하는 게 ‘백의(白衣) 천사’라고 여겼다. 적어도 ‘메이커널스(MakerNurse)’를 알기 전까지는. 헌데 지근거리에서 환자를 접하는 만큼 그들에게 가장 필요하고 절실한 부분을 인지하고 있는 간호사들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은 무궁했다.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겪는 숱한 불편함에서 ‘불’을 떼어 ‘편함’을 느낄 수 있게 하자는 마음이 바로 ‘메이커널스(MakerNurse)’ 탄생 배경이다. 오롯이 환자를 위한 간호사들 아이디어 소통창구를 지향하는 메이커널스는 당당히 ‘간호’ 패러다임 변화를 예고했다. 그 변화 선봉에 선 충남대학교병원 메이커널스(MakerNurse)팀은 참신함을 넘어 혁신의 길을 개척 중이다.
생각이 현실로, 신기한 경험에 매료
메이커널스는 환자에게 보다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간호를 제공하기 위해 충남대병원 간호사들이 발족한 싱크탱크(Think Tank)다.
환자, 보호자뿐만 아니라 직원들이 느끼는 불편함을 개선하기 위해 사소하다고 느끼는 부분이더라도 변화를 만들어 가고픈 간호사들이 의기투합한 결과물이다.
국내에서는 최초이지만 사실 앞서 미국에서 운영 중이던 메이커널스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 병원환경에 맞게 각색했다.
지난 2020년 간호부 주도로 지원자를 모집했고, 이후 카카오톡 채널 개설, 국내 헬스케어 관련 프로그램 참여, 산학협력 활동에 이르기까지 점차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정식 명칭 ‘CNUH(충남대병원) 메이커널스’는 현재 3기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무래도 생소했던 탓에 1기는 3명으로 출발했다.
초반 메이커널스를 알리고 홍보하는 역할에 집중한 결과 2기는 8명이 합류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토대로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했다.
지금은 아이디어 개발을 위해 TEAM IT(Idea of Twinkle–빛나는 아이디어를 가진 간호사들의 모임)가 주축이 돼 매달 1회 정기적으로 아이데이션(Ideation)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근무경력 4년 차부터 27년 차까지 다양한 세대로 구성된 메이커널스팀은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갖고 모이지만 항상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신기한 경험에 매료돼 있다.
실제 그동안의 활동을 통해 특허출원 4건, 실용신안 출원 6건을 보유하고 있다. 원내에서 진행된 직무발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고, 현재 특허 등록 절차를 진행 중이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한 의료기관 ESG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굵직한 성과를 이뤄냈다.
타 부서와 협업, 병원도 물심양면 지원
이러한 성과의 기저에는 ▲자유로운 아이디어 제안 문화 ▲독창적 아이디어 개발 ▲간호업무 효율성 제고 ▲미래의료를 선도하는 간호 등 4가지 가치가 작용하고 있다.
실제 메이커널스팀은 발족 이후 충남대병원 전체 간호사 1657명 중 1027명을 웹 플랫폼에 참여시켜 자유로운 아이디어 제안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독창적 아이디어 실현의 대표적 사례는 배액관 관리 시스템이다. 메이커널스팀은 수술이나 시술 후 환자의 안전한 배액관 관리를 위해 자동풀림 배액관 잠금장치를 고안해 냈다.
물론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인 만큼 메이커널스팀은 산발적으로 모인 아이디어를 선별해 다듬이 작업을 통해 완성도를 높인 후 타 부서와의 협력을 도모한다.
기술사업화팀, 의료기기융합연구센터, 의공학과 등을 통해 다양한 자문도 얻고 아이디어가 확장될 수 있도록 협업하고 있다.
간호사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다른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시제품을 제작, 궁극적으로는 의료현장에 널리 보급되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뿐만 아니라 충남대학교 간호대학과 간호지식기반연구 캡스톤디자인 실습 협력을 통해 단순히 간호사로서가 아닌 산학연 교육 활성화와 인재 양성을 위한 기반도 다졌다.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만큼 병원 차원에서 물심양면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팀원 모두 진료현장에 몸 담고 있는 만큼 보다 수월한 메이커널스팀 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근무시간 조정을 통해 회의 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배려했다.
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공모전 참여, 초청 강연 등 외부 활동이 잦아지면서 각종 출장비도 지원하고 있다.
“정식 부서 편제로 전문성 강화 지향”
다만 아직은 정식 부서가 아닌 별동대인 탓에 아무래도 제약이 적잖다. 특히 회의 참석이나 외부 일정이 있을 때면 같은 부서 동료들에게 여간 미안함이 큰 게 아니다.
때문에 멤버들은 언젠가는 메이커널스팀이 정식 부서로 편제돼 오롯이 싱크탱크 역할에만 전념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메이커널스팀을 이끌고 있는 한성민 고객서비스팀장은 “아직은 태동기이지만 굵직한 성과를 기반으로 정식 부서로 도약해 전담 아이디어 소통창구 역할을 수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간호사들의 아이디어가 의료현장에 널리 보급돼 환자 불편과 간호사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선한 영향력을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멤버들 의지도 다부지다.
신투석실 송석민 간호사는 “업무에 쫓기며 평소 갖고 있던 물음표를 해결하지 못한 채 한 해 한 해 흘려보냈지만 메이커널스를 만나며 물음표는 느낌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와 보호자들의 불편을 좀 더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넓은 시야와 열정을 갖고 업무에 임할 수 있는 메이커널스 덕에 활력을 얻는다”고 덧붙였다.
김경희 간호행정과장은 “환자뿐만 아니라 모두가 편리한 특허를 발명하고 싶다”며 “업무 개선에도 앞장 서 간호사가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이어 “아주 작은 아이디어라도 함께 고민한 끝에 완성되면 그 뿌듯함은 형용하기 어렵다”며 “임상현장에서 느끼지 못했던 기분 좋은 설레임과 성취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덧붙였다.
한성민 고객서비스 팀장은 “서로의 의견에 경청하고 배려하며 우리의 아이디어가 의료현장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비록 실패의 순간에도 더 많은 기회가 있음을 알기에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작은 결과에도 함께 기쁨을 나눌 줄 아는 메이커널스팀 일원임이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