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신경외과 환자가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집중되면서 지역 의료진은 고난도 수술 경험과 숙련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수술 경험이 줄어들면서 환자를 수도권으로 보내게 돼 지역 진료 기반이 약해지는 악순환도 이어지고 있다.
박준범 울산대병원 소아신경외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신경외과학회장)는 최근 데일리메디와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큰 소아 뇌종양이나 혈관수술을 한 지 5~6년 됐다”며 “경험이 너무 뜸해지면 환자가 와도 수도권으로 보내는 게 낫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수도권 병상 확대와 함께 지역 의료진과 환자가 수도권으로 이동하면서 지방 소아신경외과 수술 자체도 줄었다. 배후진료 여건까지 약화되면서 지역 수술 기반은 갈수록 위태로워지고 있다.
소아신경외과 수술은 집도의만으로 할 수 없고 소아마취가 가능한 마취과 의료진과 소아청소년과, 신생아·소아중환자 진료 등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더욱이 1세 미만 소아는 마취 과정에서 경험 있는 의료진의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수도권 주요 어린이병원에는 관련 인프라가 비교적 갖춰져 있지만 지역에서는 소아마취나 배후진료 인력이 부족하면 고난도 진료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울산 지역 유일 상급종합병원인 울산대병원에서도 같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박 교수는 “예전에는 소아 뇌종양이나 혈관 수술도 했지만 소아청소년과에서 입원 환자를 받지 않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아신경외과 환자도 오지 않았다”며 “지금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 어려운 신생아 응급수술 정도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 응급환자를 받아줄 병원이 부족해 장거리 이송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경련이 멈추지 않고 뇌출혈이 확인된 아이가 부산지역 대학병원에서도 수용되지 못해 진주에서 울산대병원까지 이송된 사례가 있었다.
박 교수는 “진주에서 부산을 거쳐 울산까지 약 200km를 이동해 왔다”며 “다행히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어서 신경외과와 소아과 등 여러 의료진이 함께 밤새 치료했고, 약물로 경련을 조절한 뒤 열흘 정도 입원한 뒤 퇴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환자가 오면 결국 받아야 하지만 사실상 총력전이 된다”며 “밤을 새운 뒤 다음 날 업무를 대신할 인력도 없어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진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힘든 상황을 토로했다.
전임의 3년째 ‘0명’…전공의 수련도 난관
지역 진료 기반이 약해지는 사이 후속 진료진 유입도 끊겼다.
박 교수에 따르면 국내 소아신경외과 전임의는 3년째 한 명도 없다. 전문의 취득 후 소아신경외과를 집중적으로 수련하는 젊은 의사가 사실상 사라진 상태다.
현재 소아신경외과 진료인력을 단순히 몇 명이라고 집계하기도 쉽지 않다.
서울 어린이병원에는 소아환자만 전담하는 의료진이 있지만 지역에서는 성인 뇌혈관·뇌종양 등을 담당하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이 분야 소아환자까지 함께 진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후속 인력 단절은 전임의 단계에 그치지 않는다.
박 교수는 “예전에는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소아환자를 많이 접해 이후에도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었다”며 “지금은 일부 병원을 제외하면 수련 중 소아환자를 거의 보지 못해 경험이 부족하고, 그만큼 소아환자 진료를 더 꺼리게 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소아 진료 자체 특수성도 젊은 의사들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어린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워 보호자 설명 등을 토대로 상태를 파악해야 하고, CT나 MRI 검사에서도 진정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검사 하나에도 성인보다 많은 인력과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젊은 의사들이 소아신경외과 꺼리는 이유 첫 번째 ‘소송’
박 교수는 “학회 설문에서도 소아신경외과를 꺼리는 이유로 첫 번째가 소송 문제였고 두 번째가 경제적인 문제였다”며 “환자 상태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아 최선을 다해도 결과가 나쁠 수 있다는 데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최근 소아 고난도 수술 수가는 크게 인상됐지만 후속 인력 문제까지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는 “수가가 많이 오른 것은 맞지만 그동안 어린이병원이 수술할수록 적자를 보던 부분을 어느 정도 보전하는 수준”이라며 “경제적인 지원뿐 아니라 의료진이 송사에 과도하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난도 환자는 집중하고 응급은 지역 대응하는 광역 의료네트워크 필요”
박 교수는 지역 소아신경외과 진료를 모두 한 병원에서 완결하기보다는 고난도 진료는 전문센터에 집중하고, 지역에서는 응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역할을 나눌 필요가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선천성 질환 가운데 계획해서 치료할 수 있는 경우는 전문센터로 집중할 수 있다”며 “반면 이동이 쉽지 않은 신생아나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은 지역에서 최소한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경기 남부에서는 3개 병원이 중증 소아응급환자를 번갈아 맡고 다른 병원들이 백업하는 형태의 네트워크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박 교수는 “한 병원이 당직을 맡으면 다른 병원들이 백업하고 다음 날에는 또 다른 병원이 맡는 식으로 역할을 나눌 수 있다”며 “소아신경외과는 인력이 워낙 적기 때문에 더 큰 권역으로 묶어 전원과 진료를 분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역의사제도 지역 의료인력을 늘리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소아신경외과 같은 고난도 세부분야까지 직접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게 박 교수 판단이다.
그는 “지역의사제는 기본적인 진료나 난도가 높지 않은 의료행위를 지역에서 유지하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하지만 소아신경외과나 소아심장처럼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는 수련할 수 있는 곳 자체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근무할 의사라도 이런 분야를 선택한다면 결국 충분한 환자와 경험이 있는 전문센터에서 별도 수련을 받아야 한다”며 “고난도 진료는 지역의사제와 별개로 일정 부분 집중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후속 인력 문제는 더 장기적인 과제다.
박 교수는 “지금 시스템으로도 5년, 길게 보면 10년 정도는 유지할 수 있겠지만 이후에는 실제 남아 있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을 수 있다”며 “경제적·법률적 지원을 통해 후속 인력이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가운데 대한소아청소년신경외과학회에서는 기존 의료진 역량을 유지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학회는 연수교육과 보수교육, 질(質) 관리 등을 통해 현재 소아환자를 진료하는 신경외과 의사들 역량을 지속적으로 관리할 계획이다.
박 교수는 “정부에 지원을 요구하는 만큼 의료계도 소아신경외과 의사로서 필요한 역량을 갖추고 관리해야 한다”며 “학회에서도 현재 의료진 진료 역량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교육과 질 관리 체계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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