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보험 요양급여 부당청구로 10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은 요양기관이 자금난 등을 이유로 뒤늦게 업무정지 처분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했으나 행정심판에서 가로막혔다.
당초 환자 진료 공백을 명분으로 내세워 과징금을 스스로 선택하고 정작 거액의 납부액이 확정되자 경영상 어려움을 핑계로 입장을 번복하는 행위는 행정의 법적 안정성을 해쳐 허용될 수 없다는 판단이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는 최근 매출 감소와 건물 방수공사 비용 부담 등을 이유로 보건복지부가 부과한 과징금 처분을 업무정지 처분으로 변경해 달라는 ㄱ의료재단 행정심판 청구를 기각했다고 27일 밝혔다.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복지부장관은 속임수나 부당한 방법으로 공단이나 환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요양기관에 대해 업무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다만 의료기관 폐쇄로 인한 환자들의 진료 접근성 침해 등 공익적 불편을 방지하기 위해 해당 정지 처분에 갈음해 총 부당청구액의 최대 5배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ㄱ의료재단이 지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수년간 요양급여비용을 부당 청구해 2억여 원을 부당 수령한 사실이 복지부 현지조사 등에서 적발되면서 시작됐다.
복지부는 적발 규모에 따라 ‘업무정지 76일’에 해당한다는 처분 사전통지를 내렸고, 환자 진료 편의 등을 고려해 업무정지에 갈음한 과징금 전환 신청이 가능하다는 점도 함께 안내했다.
당시 재단 측은 업무정지 처분이 집행될 경우 장기간 진료 공백이 불가피해 내원 환자들에게 큰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과징금 처분을 선택했다.
아울러 납부 부담을 덜기 위해 12개월 분할납부까지 신청하며 처분을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행정처분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업무정지 76일에 갈음하는 부당청구액 5배 수준인 10억여 원의 과징금을 최종 부과했다.
문제는 그 이후 발생했다. 거액 과징금 고지서를 받아 든 재단 측은 돌연 태도를 180도 바꿨다.
최근 병원 경영 악화로 매출이 급감한 데다 노후 건물 방수공사 비용 등 긴급 지출이 겹쳐 1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재단 측은 과징금 부과 처분을 취소하고 애초의 76일 업무정지 처분으로 되돌려달라며 중앙행심위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중앙행심위는 의료재단 주장에 법리적 타당성이 전혀 없다고 보고 청구를 전면 기각했다.
중앙행심위는 업무정지에 갈음한 과징금 부과 처분은 처분청인 복지부의 고유하고 적법한 재량권 행사 범위에 속한다고 못 박았다.
특히 요양기관 스스로 환자 불편을 이유로 과징금 처분을 희망했고, 병원 시설 보수공사 등 내부 관리 비용은 제재 처분과 무관하게 기관이 본래 자체 부담할 통상적 경영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행정청의 처분이 절차적·실체적으로 적법하고 정당하게 완성된 이상, 법령상 특별한 무효·취소 사유가 없는 한 제재를 받는 당사자의 경제적 유불리나 주관적 사정만으로 사후 이를 번복하거나 입맛대로 바꿀 수 없다는 행정법상 대원칙을 재확인했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이번 재결을 두고 부당청구 요양기관의 도덕적 해이에 엄중한 경고를 보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통상 개원가나 중소병원에서는 수억 원대 과징금이 예상될 때 환자 진료 공백을 핑계 삼아 과징금 전환을 유도한 뒤 자금 압박이 현실화되면 다시 단기 휴진(업무정지)으로 돌아서려는 시도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행심위가 이번 결정으로 징벌적 과징금 실효성을 재확인하면서 요양기관의 면피성 처분 변경 꼼수에도 확실한 빗장이 걸리게 됐다.
조소영 중앙행심위원장은 “이번 재결은 법령 위반행위에 상응하는 제재 실효성을 확보하고 법 질서를 확립하는 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며 “처분이 이뤄진 후 당사자 사정이나 입장에 따라 이를 임의로 변경하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고, 과징금 처분 취지와 법적 효과를 존중하는 것이 신뢰받는 행정의 토대”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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