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소아응급실 압수수색과 국민 치료권
한미애 서울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
2026.11.02 05:39 댓글쓰기

지난 10월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는 아주대병원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에 대한 경찰의 압수수색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여야 의원들은 수사 과정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사 책임자에게 거듭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돌아온 답변은 사과가 아닌 “안타깝게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의료계, 경찰 수사 자체를 부정하는게 아니다


환자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료진이 수사 대상이 된 상황에서 수사 책임자가 보여야 할 태도는 과연 무엇인가. 


사과는 수사기관 권위를 훼손하는 일이 아니다. 잘못이나 미흡한 점이 확인됐다면 이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은 오히려 공권력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일이다. 


수사 책임자가 끝내 사과 뜻을 밝히지 않은 채 안타깝다는 입장을 되풀이한 모습은 의료현장이 제기하는 우려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되묻게 한다.


물론 환아 사망 원인은 객관적으로 규명돼야 한다. 유족이 품은 의문은 존중받아야 하고 의료행위에 잘못이 확인된다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경찰 역시 증거를 확보하고 범죄 혐의를 수사할 권한과 책무가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수사 자체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생명을 다루는 응급의료 현장에 대한 수사가 어떤 원칙과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가에 있다.


사망 결과만으로 의료진 책임을 일방적으로 판단해선 안돼


환자가 치료받던 중 사망했다는 사실과 의료진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만한 잘못이 있다는 것은 별개 문제다. 


의료행위 적정성은 사망이라는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당시 환자 상태와 진료 과정, 의학적으로 요구되는 주의의무와 실제 의료행위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특히 소아응급진료는 환자의 상태가 짧은 시간 안에도 급격히 악화될 수 있고 의료진은 제한된 정보와 시간 속에서 신속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영역이다. 


의료진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처치를 이어 가지만 최선을 다하고도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상황을 사후적으로 평가할 때는 결과만이 아니라 당시 의료진이 처한 상황과 의학적 판단 근거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이번 압수수색과 관련해 국정감사에서는 압수수색 전에 의료전문가 자문을 구했는지에 대한 질의에 수사 책임자가 ‘구하지 않았다’고 답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병원 측과 사전 협의를 거쳤고 진료가 끝난 공간에서 필요한 최소 압수수색을 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응급의료 현장 특수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았으며 의료진이 진료 과정에서 부담과 혼란을 겪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당사자들 설명이 엇갈리는 상황일수록 필요한 것은 일방적인 해명이나 방어가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 확인이다. 


수사 과정에서 실제로 진료에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 압수수색 범위와 방식은 적절했는지, 의료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수사기관 자체 판단만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 내리기보다는 제기된 우려를 검토하고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응급실은 수사를 위해 멈출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의료진의 집중과 신속한 판단, 치료 연속성이 보장돼야 하며 작은 혼란이나 진료 지연도 환자에게는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응급의료 현장에 대한 강제수사는 일반적인 공간에서의 수사와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는 응급실을 수사 성역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다. 의료기관에 특권을 부여하거나 정당한 수사를 막자는 것도 아니다. 


필요한 증거는 확보하되 환자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도록 수사 필요성과 범위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아응급의료 위축은 결국 국민 치료받을 권리 문제 초래


이번 사안이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소아응급의료가 이미 어려운 여건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소아 인구 감소와 진료 여건 변화, 인력 확보 어려움 속에서 중증·응급 소아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과 전문인력을 유지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환자가 적더라도 위급한 아이가 발생하면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소아응급의료는 평소의 진료량이나 수익성만으로 가치를 평가할 수 없는 필수의료다.


그런데도 의료진이 진료 결과에 대한 법적 부담을 넘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과정마저 범죄 혐의의 관점에서 평가받을 수 있다는 불안에 놓인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나서는 의료진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진이 위험 부담 때문에 응급진료를 주저하고 의료기관이 환자 수용에 소극적으로 변한다면 그 피해는 의료계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갑자기 아픈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부모, 적절한 치료를 받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해야 하는 환아, 거주 지역에 따라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때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국민이 그 부담을 떠안게 된다.


의료진을 위축시키고 필수의료 기반을 약화시키는 환경의 대가는 결국 국민이 치르게 된다.


국정감사에서 확인된 문제는 사과 한마디로 끝낼 사안도, 사과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판단을 대신할 사안도 아니다. 


수사기관은 제기된 우려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응급의료 현장에 대한 강제수사 원칙과 절차를 구체화해야 하며 정부 역시 소아응급의료를 유지할 인력과 시설, 진료 여건을 실질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의료진 권익만이 아니다. 위급한 순간에 아이가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의 안전망이다.


공권력의 권위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민 우려에 귀를 기울이고, 필요한 경우 자신의 판단을 돌아보며 잘못이 확인되면 바로잡는 데서 신뢰가 쌓인다. 이번 사건에서 수사기관이 보여주어야 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책임 있는 자세였을 것이다.


이번 사건이 의료계와 수사기관 대립으로 남지 않고, 생명을 다루는 의료현장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객관적인 진상 규명과 공정한 책임 판단이 함께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10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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